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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May 11. 2022

# 15. 진정 아줌마?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 15. 진정 아줌마?


우여곡절 끝에 정호와 정미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엄마의 설득에도 둘은 아이를 지켜냈고 아이를 위해 정미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임신 6개월 접어 들 무렵 그들의 불같은 사랑은 결실을 맺어 드디어 결혼에 성공했다.

그리고....

솥뚜껑 운전 경력 어느덧 7년...

정미는 어느새 “아줌마”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되었다.

어울리는 사람들도 자신의 동창이 아니라 아들들 동창의 엄마들로 바뀌었다.

화재거리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 남편의 이야기... 그리고 시월드....




남편과도 사랑이라고 했던 예전에 비해 뜨거움은 느낄 수 없었고 그저 친구 또는 형제에 가까운 관계가 되어 있었다.

 사랑으로 산다고 하기보다 의리라고 해야 할까...

걱정거리는 가족들의 건강과 시댁.. 그리고 친정...

정미의 친정엄에게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전화가 온다.

집도 친정과 가까워 한 달에 몇 번씩은 들른다.

그에 반해 시댁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정호 본가가 대구다 보니 한 달에 한 번은 힘들지만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한다.

정호는 삼 형제 중에 막내이다.

결혼 당시 작은 형도 결혼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시댁에서는 1년을 더 늦출 것을 부탁했지만 불러오는 배 때문에 작은 형이 결혼하고 4개월 뒤... 해가 바뀌자마자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1년 사이 두 형제를 결혼시키려다 보니 돈이 여의치 않았고 해서, 그들이 살 집은 친정.. 즉 정미 집에서 마련해 주었다.

그 덕에 정호는 처가에 눈치 아닌 눈치를 보고 살고 있다.

시월드... 처월드... 그들에게는 낯선 말이 아니다.

삼 형제 중 유독 부모님을 많이 챙기는 정호 덕에 생활비중 40만 원씩은 꼭 본가로 보냈고 늘 빠듯한 살림으로 정미는 친정에 손을 벌릴 때가 많았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다.


큰 형님네는 30만 원 작은 형님네는 10만 원인데 정호는 40만 원씩 보내니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것만 줄여도 친정 부모님한테 손 안 벌려도 된다고 설득해보지만
정호는 손을 왜 벌리냐 한다.

없으면 없는 데로 살면 되지 애들 옷에 당신 옷 값만 줄여도 손 벌일 일이 뭐 있겠냐고 정미에게 늘 잔소리를 해 댄다.

늘 반복되는 싸움...

-정미: 애들 유치원에서 추레하게 입고 다니면 놀린단 말이야. 자기는 우리 애들이 놀림받았으면 좋겠어?

-정호: 옷 많잖아. 근데 왜 또 사냐고. 멀쩡한 옷 다 버리고 새로 사고 낭비 아냐? 자기가 매달 그렇게 옷을 사대는데 생활비 모자라는 건 당연한 거잖아.

-정미: 내가 입을 옷이 어디 있어? 늘 같은 옷만 입고 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린단 말이야

-정호: 남의 눈 때문에 옷 사잰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미: 남의 눈이 요즘 얼마나 중요한지 자기 몰라? 사회생활하니까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니야..

-정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정미: 대구에 20만 보내자. 그거라도 있으면 엄마한테 손 안 벌려도 되잖아.
-정호: 그만해라 했다!!

늘 같은 이유로 정호와 정미는 언성을 높인다.

오늘도 아침부터 정호와 한판 하고는 뚱해 있는 정미

애들 챙겨 보내고 호준맘이 차 한잔 하자는 거도 뿌리치고 집으로 올라와 소파에 들어 누워 한숨을 쉬고 있다.




울리는 휴대폰...

정미는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숨을 쉰다.

-정미: 어, 엄마..

-친정엄마: 이번 주에 애들 데리고 한 번들러.. 요즘 들어 들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드는 거 같아..

-정미: 김서방 요즘 일이 많아서 피곤해해. 다음 주에 들를게..

-친정 엄마: 아무리 일이 많아도 그렇지.. 어른이 오라는데 그런 게 어디 있니?

-정미: 엄마는 엄마만 생각해? 김서방 피곤하대잖아. 민호도 내년에 학교 들어가야 돼서 할게 많고.. 다음 주에 봐 엄마.

-친정엄마: 민호가 할게 뭐 있어? 유치원에서 요즘 한글 다 때 준다던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해 얘가. 넌 네가 집에만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지? 나도 알건 다 알아. 잔말 말고 이번 주에 들러.. 끊는다

-정미: 어, 엄마!!

정미는 다시 한숨을 쉰다. 친정엄마 눈치에 남편 눈치에...

눈칫밥만 늘어 간다.



빨래 바구니를 들고 뒷 베란다로 갔다. 옷을 색깔 별로 분리해 세탁기에 넣고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넣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가 끝나고 청소기를 꺼내 돌린다. 스팀 청소기로 집 전체를 닦아준다.

스팀 청소가 끝나면 알람이 울린다. 세탁물을 꺼내고 색깔 옷 빨래를 넣고 다시 돌린다.

앞 베란다로 가 널려있던 빨래를 걷어 거실에 던진다.

세탁이 끝난 흰 빨래들을 널고 바구니를 뒷베란다에 놓아둔다.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솔에 세제를 묻혀 바닥과 욕조, 변기를 닦는다.

젝일.. 화장실은 왜 두 개인 건지...

거실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빨래를 을 개켜 각자의 서랍에 넣어둔다.

세탁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뒷베란다로 가서 빨래를 꺼내 앞 베란다로 온다. 빨래를 모두 널고 난 후...

아... 점심은 뭘 먹지?

저녁은 뭘 해야 하나...

정미의 하루 일과이다.

점심은 간단하게 라면을 먹어야겠다며 주방으로 가다가 장난감 방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어쩌자고 저 많은 장난감을 사준 것일까..

장난감 방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 상태이다.

이걸 정리해 놓으면 아들들은 집에 들어온 지 5분도 안돼서 원래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차라리 신경을 쓰지 말자..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아서 가지고 놀 테니까...

정미는 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문득 정미는 자신의 일상을 뒤돌아 봤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나는 어디 간 거야?

물이 끓어 뚜껑이 덜거덕 소리를 낸다.

정미는... 아직 생각에 빠져 있다.

어느덧 나이는 서른을 넘어 있었고 큰애는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직장생활 2년도 채 못하고 아줌마의 길에 들어선 정미...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들..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나에게 쓰느냐 남을 위해 쓰느냐.. 정미는 순간 자신의 처지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대한민국 주부라면 누구나 정미와 같은 시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게 뻔하지만

뭐가 급해서 결혼을 빨리 했나 몰라..

정미는 한숨을 쉬며 라면을 넣으려는 찰나 물은 냄비의 밑바닥을 보일 만큼 줄어들어 있었다.

냄비에  물을 붓고 정미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정호: 여보세요?

-정미: 자기야 난데..

-정호: 넌 줄 알아~. 왜? 바쁘니까 짧게 말해.

-정미: 알았어. 오늘 몇 시에 마쳐?

-정호: 늘 마치는 시간에 마치지 왜 그래?

-정미: 애들 좀 봐주면 안 돼? 나 친구들 안 본 지 오래됐단 말이야.

-정호: 알았어. 바쁘니까 집에서 봐

-정미: 응 수고해.

정호는 가끔씩 정미가 안쓰러웠다.

늘 남편과 애들 뒤치다꺼리에 점점 아줌마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정미를 볼 때마다 자신이 너무 빨리 데려왔나 싶기도 했다.

한참을 더 싱글로 즐길 수 있었는데 뭐가 급했는지...

미안한 마음에 빨리 퇴근해 애들과 놀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미는 신이 났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술도 한잔씩 할 수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너무 즐거웠다.

-정미: 일단 미현이에게 전화부터 걸어야지

정미는 미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현: 어, 정미야..

-정미: 뭐하냐? 오늘 애들, 아빠가 봐준다는데 얼굴 좀 보자.

-미현: 너 자리 깔아야겠다. 안 그래도 방금 유라한테 전화했었는데.. 6시 반까지 블루 씨로 와.

-정미: 어머~ 집애들 나 빼고 놀려고 했어?

-미현: 어머~ 넌 애들 보느라 바쁘잖아.

-정미: 일단 거기서 보자. 옷을 뭘 입나~~

정미는 꾸민 듯 안 꾸민 듯 최대한 아가씨답게 옷을 입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틴트로 입술을 붉게 물들이고 립글로스로 마무리를 했다

-정미: 오.. 좋아.. 좋았어.

아이들과 정호가 먹을 저녁을 준비했다.

준비하는 내내 콧노래를 흥 헐 거리며 최대한 맛있게 최대한 푸짐하게 신경 썼다.

-민호: 엄마 오늘 이모들 만나?

-정미: 아빠 말 잘 듣고 있어. 알았지?

-정호: 아빤 잠만 자. 엄마 가고 나면 잠만 자는데?

-정미: 아니야. 오늘은 아빠가 놀아줄 거야

-민호: 엄마는 아빨 잘 모르는 거 같아. 그지 준호야?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애들을 봐준다는 게 딱히 정해진 건 없다.

안 봐도 비디오라고 분명 정호는 소파에 널브러져 티브이를 보거나 잘 것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있을 테고..

방과 거실은 엉망이 되어 있을 테고..

그래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놀 수 있다는 것에 정미는 감사했다.





삑삑 삑삑 삐리리~

현관문이 열리고 정호가 들어왔다.

민호와 준호는 우르르 정호에게 매달리며 정호를 반겼다.

준호를 안아보지만 어느새 준호의 묵직한 무게에 안고 들어 올리는 것도 버거워졌다.

-정미: 무겁게 뭘 안고 그래. 준호 내려와.

-정호: 어디 가길래 그리 이쁘게 꾸몄냐?

-정미: 가긴 어딜 가. 늘 가던 대지..

-정호: 일찍 오고. 술 많이 마시면 알아서 해~~!!!

-정미: 알았어. 고마워 밥 차려 놨고 애들은 다 씻었어. 일찍 올 거야. 다녀올게.



정미는 신을 신고 인사를 하고는 현관을 나갔다.

늘 만나는 단골집. 정미는 택시를 잡아타고 블루 씨로 향했다.

블루 씨를 들어서자 사장은 정미를 바로 알아보고는 방을 가리켰다.

정미는 아직까지 노래를 흥 헐 거리고 있었고 문을 열자 유라와 미현이 와 있었다.

-미현: 너 어디 가? 뭘 그렇게 꾸미고 나왔어?

-정미: 꾸미긴 뭘 꾸며? 오래간만에 친구들이랑 한잔하는데 아줌마처럼 보일 순 없잖아.

-미현: 여기서 네가 제일 아가씨 같거든.. 그 빨간 주댕이 좀 닦아!

미현은 냅킨을 던졌다.

-유라: 무슨 할 말이 있는 거야?

유라는 지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미현: 할 말은 뭘, 그냥 얼굴 좀 보자는 거지..

-정미: 너 그 기획이사랑 잘 돼가고 있는 거야?

미현은 기획이사와의 지난밤을  이야기했다.

언제부터인가.. 정미는 설렘이 뭔지 잊고 살았던 거 같다. 사랑? 그게 뭐였더라?

한때는 사랑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두근거리는 하루를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감정들...

그저 남편에 자식들 뒷바라지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어느 순간부터 잊고 살고 있었다.

정미는 그냥 아줌마일 뿐이다.

아줌마....



정미의 친구들은...

리더십이 있고 늘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기에 정미는 미현이 부러웠다.

계산이 빠르고 일 처리 능력이 빨라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유라기에 정미는 유라가 부러웠다.

그래... 그래도 남편이 있고 자식들이 있기에 내가 있는 거니까..

우리 가족들은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그래서 내가 있는 거잖아.

정미는 오늘도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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