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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May 21. 2022

# 17. 칼로 물 베기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 17. 칼로 물 베기

# 17. 칼로 물 베기




시끄러운 TV소리..

흔들리는 침대...

정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누군가가 정미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정미는 모든 게 귀찮았다.

여긴 어디지??

정미가 눈을 떴을 땐 흔들리는 소파 위에 널브러진 자신을 보며 소리 지르는 유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

-유라: 야 이 집애야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애들 데리고 너희 집으로 가라.

-정미: 애들? 어, 준호 민호 어떻게 왔어?

정미의 눈앞에는 유라의 소파 위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민호와 준호의 모습이 보였다.

-민호: 아빠가 오늘 바쁜 일 있다고 여기서 놀아라고 했어.

-준호: 엄마, 엄마, 아빠가 여기서 자고 와도 된다고 했어. 근대 진짜 자고 가는 거야?

정미의 얼굴이 점점 울그락 불그락해져 가고 있다.

가방을 뒤져 전화기를 꺼냈고 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젠장 받지 않는 전화

들리는 소리는 받을 수 없다는 여자의 목소리..

-정미: 이 인간이 진짜 뭐 하자는 건지? 아.. 진짜 악~~~~~

-유라: 야! 됐고 깼으니까 너네 식구들 다 데리고 당장 집으로 가라..

-정미: 넌 친구라는 년이 이 상황에 그런 말을 해야겠어?

-유라: 그럼 이 상황에 뭐라고 할 거 같냐? 내 황금 같은 주말에 잠도 못 자고 쉬지도 못하는데.

-정미: 나쁜 것..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유라: 너무 한 건 내가 아니라 너라는 생각은 안 드냐? 어제 일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고 하는 건 아니지?

순간 정미는 어젯밤을 떠올렸다.

블루 씨에서 술을 마시고는 언제 여기에 왔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눈만 깜빡거리는 정미를 보며 유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머리가 지끈 아팠고 속은 따가웠다.

-정미: 아~ 속 쓰리다. 갈 때 가더라도 아침은 먹고 가자.

유라는 뭐라고 구시렁대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외박을 했는데도 걱정은커녕 아이들을 데리고 이렇게 두고 가다니...

정미는 화가 났다. 아이들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었기에 개그 프로를 보며 의미 없는 웃음을 웃었다.




유라는 콩나물 국을 했다며 식사를 권했다.

미안하기도 하면서도 고마웠다.

지금 당장의 심정은 유라를 안고 펑펑 울고 싶었지만 피곤함이 묻어나는 유라의 얼굴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 너무 오랜만이었다.

-정미: 야, 늘 차려만 주다가 남이 차려준 밥 먹으니까 밥맛이 엄청 좋은 거 있지.. 넌 안 먹어?

유라는 방으로 향했고 정미는 민호와 준호에게 밥을 먹였다.




식사를 끝내고 정리를 한 후 정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정호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정말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정미는 수만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컵이 산산조각 났다.

-준호: 엄마 내가 물 마시려 했는데 미끄러져서 깨졌어. 어떻게 이모 화내는 거 아냐?

-정미: 됐어. 엄마가 치울게 너흰 얌전히 소파에 앉아 티브이나 봐

정미는 한숨이 났다.

영락없는 아줌마의 모습에 신이 싫었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결혼하면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마음은 늘 피곤하고 여력이 없었다.

컵이 깨지는 소리에 유라가 깬 모양이었다.

유라의 얼굴은 제대로 화가 난 표정이었다. 정미는 어쩔 줄 몰랐다.

-정미: 애들이 물 마시다가 떨어뜨렸지 뭐야.. 우리 집에 컵 많으니까 하나 갖다 줄게..

-유라: 야!! 그 컵이 그 컵이랑 같아? 그게 어떤 컵 인대. 그리고 왜 아직 안 가고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정미: 그러게.. 아직 안 갔네.. 밥 차려 줄까?

-유라: 됐고 그냥 가라. 내가 치울 테니까 지금부터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집으로 가주면 감사할 거 같으니까

-정미: 어, 그래그래. 미안해 지금 갈게.. 아참!! 그게.. 변기가 좀 막혔어.. 애들이 뭘 넣은 거 같은데 뭔지를 모르겠네.. 그리고 지갑에 택시비가 없더라고.. 이만 원만 꿔주라..

유라는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정미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유라에게 아양을 떨었다.

유라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차키를 가지고 나왔고 정미는 아이들을 데리고 얼른 차에 올랐다.

매산동 푸르지오 앞.

유라는 고맙게도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정미: 잘못 눌렀나?

비밀번호를 확인하면서 천천히 눌렀다.

여전히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정미: 뭐야? 비밀번호 바꾼 거야? 이 사람이 진짜.. 정말 나랑 안 살려는 거야 뭐야?

정미는 초인종을 쉴 새 없이 눌렀다 현관문에 귀를 대어 보지만 집안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정미는 화가 났지만 최다한 침착하게 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라: 왜? 왜?? 또 뭔데? 우리 집에 뭐 놓고 왔니? 담에 내가 갖다 줄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빠빠이 하자.

-정미: 유라야.. 그게... 우리 신랑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 놨나 봐.. 어떡하지?

유라의 긴 한숨소리가 들렸다.

-유라: 나보고 어떡하라고? 니 신랑하고 해결해.. 나를 너네 부부 문제에 개입시키지 말라고.

-정미: 신랑이 전화를 안 받는데 어떡하냐? 나쁜 것.. 넌 내가 불쌍하지도 않니?

-유라: 네가 왜 불쌍해? 남편 있고 니 닮은 애도 둘이나 있는데 내가 널 왜 불쌍히 여겨야 되는데? 불쌍한 건 나 아니니? 이 나이에 아직 솔로인 내가 넌 불쌍하지도 않니?

-정미: 지금 현관 비밀번호가 바뀌어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니까!. 밖에 계속 있으라는 건 아니지? 애들 봐서라도 우리 좀 데리고 가라?

유라는 일단 끊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정미는 너무 창피했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자존심이라는 게 있기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쩌면 유라가 친구라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유라의 차가 보였다. 아이들과 정미는 신속하게 차에 올랐고 유라는 화서동으로 차를 몰았다.

미현의 집 근처로 들어서자 정미는 화가 났다.

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유라에게도 미안하지만 미현에게는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미현의 집에 들어서자 유라는 부리나케 가버렸고 정미는 다시 미현에게 신세를 져야 했다.

여전히 정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미현의 성질에 아이들은 얌전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고 정미는 미현의 침실에서 휴대폰을 충전하며 다시 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호의 전화기는 아직까지 꺼져있다.

미현이 방에 들어오자 정미는 게임을 하는 척했다.

-미현: 야!! 니 신랑한테 다시 전화해봐!!

-정미: 안 받는다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있다가 저녁쯤에 다시 전화해보면 돼!!

-미현: 그럼 밖에 나와서 니 애들 좀 챙겨!!

-정미: 챙길게 뭐가 있냐? 지들끼리 알아서 잘 노는구먼.. 신경 쓰지 말고.. 일루 와서 너도 누워!!

어이없어하는 미현의 표정에 정미는 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정호의 전화기는 여전히 꺼져있다.

싸움의 발단은 돈.. 그놈의 돈이 뭔지..

그 돈 때문에 한때 불같이 사랑했던 남자가 이렇게 변해버렸다.

물론 정미도 많이 변했다.

많이 억척스러워지고 나름의 기준이 잡혀있고 계산기도 이제 제법 잘 두드린다.

정미는 잠이 오지 않았다.

불이 꺼진 미현의 거실에 누워있는 민호와 준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전 6시 30분쯤....

정미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기에 결국은 밤을 새우고 말았다.

40분쯤 되자 정미의 전화기가 진동으로 몸서리쳤다.

정미는 얼른 전화기를 확인했다.

정호였다.

정미는 최대한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정미: 응.....

-정호: 어디야? 유라 집이야?

-정미: 아니... 미현이네..

-정호: 애들은?

-정미: 아직 자..

-정호: 그리로 갈 테니까 잠깐 나와봐. 할 말이 있어..

정미는 두려웠다. 설마.. 이 사람이 이혼하겠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현관 비밀번호까지 바꾼 걸로 봐서 정호는 화가 단단히 나 있는 상태가 분명했다.

-정미: 알았어. 다와 가면 전화해.

정미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잘못했다고 해야 하나?

시부모님이 미워서가 아니라 단지 생활이 힘드니까 줄여드리자고 한 거였다고.. 아니야.. 되려 제자리걸음일 뿐이야.. 입밖에도 내지 말자..

정미는 짧은 시간 동안 수 십 가지의 생각을 떠올렸다.




7시쯤 정호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정미는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으로 갔다.

미현은 아직 자고 있었고 애들도 아직 한밤중이다.

현관문을 여는 찰나 민호가 깬 모양이다.

-민호: 엄마 어디가?

-정미: 아빠가 밑에 와있대. 할 말 있다고 하니까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이모 말 잘 듣고 준호 잘 챙기고 있어.

-민호: 나도 가면 안돼?

-정미: 금방 갔다 올게..

정미는 서둘러 미현의 집을 나섰다.

1층에 내려가니 입구에 정호의 차가 보였다. 날씨가 많이 차가웠다.

정미는 차를 탔다.

정호는 얼굴 한번 쳐다보지 않고 차를 몰았다.

도착한 곳은 매산동 푸르지오.. 둘의 집이다.

정미와 정호는 한 마디도 않은 채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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