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록을 응시하는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고 눈물은 정미의 뺨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041129 041129...........
2004년 11월 29일 그들의 첫 입맞춤 한날.. 사랑을 시작하기로 한 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날은 그들에게 특별한 날이다.
정호는 도어록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는 정미의 손을 잡아끌었다.
-정호: 왜 울고 그래? 내가 마음대로 비밀번호 바꿨다고 그러는 거야?
-정미: 비밀번호 할게 그렇게도 없었어?
-정호: 그렇게... 딱히 생각나는 번호가 없더라고.. 들어가자.
정호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정미도 눈물을 닦고 소파에 앉았다.
둘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정미: 할 말 있다며? 말해..
-정호:.......... 애들은 뭐해?
-정미: 할 말이 그거야? 미현이 집에 있어. 지금쯤 깨서 티브이 보고 있겠네..
-정호:.......... 정미야.... 내가 생각해 봤는데.....
정미는 그다음 말이 두려웠다.
우리 헤어지자... 이혼하자... 애들은.... 제발 그 말이 아니길... 제발... 제발...
-정호: 형님들한테 전화했어. 사정이 있어 생활비 좀 조정하자고.. 둘째 형님네가 10만 원 더 낸다고 하더라.. 우리는 20만 원 보네 드리면 될 거 같아. 그리고 미안하다. 내가 생각이 짧았던 거 같아. 그동안 네 생각을 못했던 거 같아서.. 너 없는 어제오늘 밤새 생각해 봤는데.. 너는 너 나름대로 아끼려고 하는 거 같은데 나는 괜히 너 많이 쓴다고 짜증이나 내고. 우리 부모님만 챙기라고 너한테 강요한 거 같아서.. 나도 장인어른이나 장모님께 잘하는 게 없더라고.. 비밀번호는 왜 바꿨냐면.. 번호 누를 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사랑했는지 잊지 않으려고 바꿨어. 언제부터인가 네가 정미가 아니고 민호 엄마가 되어있더라..
정미는 고개를 숙이고 정호의 말을 들었다.
이혼하자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호는 밤새 걱정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호: 이제 너도 니 시간을 좀 가져.. 매일 애들 보내고 청소 빨래 끝나고 티브이만 보지 말고 뭐라도 배우러 다니고 책도 읽고.. 문화센터 그런 곳도 있다던데.. 그림이나 바느질 같은 거도 배우고 비용도 많이 안 든다고 하더라.. 너무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우울증 오잖아. 벌이가 더 늘 수는 없겠지만 이래저래 조정해보면 될 거 같아. 잔소리 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애들 옷도 매달 사는 거보다 정해놓고 사면 이래저래 헛돈 안 쓸 거 같고 살림은 네가 잘하니까 번거롭겠지만 잘 조정해봐.
정미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정호: 내가 잔소리하는 거 같이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조금씩 양보하면서 살자. 서로에게 답답한 것도 있고 화나는 것도 당연히 있을 거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면 우리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물론 나부터 노력해야지..
-정미: 나는 자기가 이혼하자는 건 줄 알았어.
-정호: 이혼? 우리가 이혼을 왜 해? 너 이혼하고 싶어?
-정미: 미쳤어? 누가 이혼한대? 나는 자기가 너무 화가 나서 이혼하자는 말 하려고 나 부른 줄 알았다는 거잖아.
-정호: 어이구.. 생각하는 거라고는.. 살면서 더한 것도 겪을 건데 고작 그런 거 가지고 이혼하면 세상 사람들 다 이혼했겠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찌 변한 게 없어..
정호는 정미의 볼을 꼬집었다.
그들의 사랑이 처음 시작된 날처럼.. 사랑스럽게 정미의 뺨을 꼬집고는 크게 웃었다.
-정미: 하지 마~~ 나 어린애 아니거든..
-정호: 나한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너야.. 어이구..
정호는 정미를 꼭 안았다.
나를 믿고 결혼해준 그녀이기에 상처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함께 한 시간 동안 많은 상처를 줬고 많은 것을 강요했고 어느 순간 그녀가 그녀 자신이 아닌 나를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가슴이 시리도록 아팠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만 주리라 다짐했었는데...
정미는 정호가 고마웠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정호를 원망하고 살았었는데 정호는 언제나 정미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작 자기밖에 몰랐던 건 자신이었다.
스스로를 아줌마라서.. 아줌마이니까..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방치하게 되고..
아줌마면 어때서?
아줌마라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해도 그 많지 않은 일들 중에 정미는 어떤 것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정호: 정미야... 이제 너도 너를 좀 사랑해봐.. 그렇다도 나보다 더 사랑하라는 건 아니야.. 민호 준호도 사랑해주고 나도 사랑해주고.. 그리고 너도 사랑하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정미는 정호의 품에 안긴 채 정호의 등을 두드렸다.
-정미: 자기야 미안해.. 자기를 못 믿고 나쁜 생각만 하고.. 앞으로 자기 더 많이 사랑할게.. 나보다 더 많이..
-정호: 어이구 우리 아기.... 얼굴 함 봐봐..
정호는 두 손으로 정미의 얼굴을 감쌌다.
눈물로 범벅이 된 정미의 얼굴을 보며 정호는 활짝 웃었다.
-정호: 바보같이 왜 울어.. 콧물도 나잖아.
정미는 정호의 손을 풀며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정미: 씨.. 뭐야..
정호는 다시 정미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나를 믿고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
정호의 눈에 담긴 정미는 세상 어느 여자보다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정호는 정미의 입에 입을 맞췄다. 오랜만에 하는 입맞춤..
부부로 살면서 입맞춤을 해본 적이 꽤 오래된 듯했다.
늘 함께 였는데.. 늘 곁에 있으면서 따뜻하게 손 잡아 준다거나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이 어색한 사이가 돼버렸다.
정호의 입술은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럽다.
정미와 정호는 긴 입맞춤을 나누었다.
-정호: 이제 내가 더 많이 안아줄게.. 우리 싸우더라도 이 손 놓지 말자. 내가 더 많이 사랑할 테니까 살다가 많이 아프고 힘들면 꼭 말해줘. 알았지?
-정미: 자기도 살다가 내가 밉거나 속 썩일 때 꼭 말해줘.. 나도 많이 고칠게.. 그리고 내가 더 많이 사랑할 거야..
정호는 정미를 번쩍 들어 올렸다.
정미는 정호의 목에 팔을 감고 안겼다.
그들의 사랑을 키워나가던 이 집 그리고 이 방..
정미와 정호는 방으로 들어갔고 사랑을 나누고 또 나누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후 4시쯤이 되자 정호와 정미는 옷을 갈아입고는 미현의 집으로 향했다.
-정미: 미현이 화 많이 났을 거야.. 우리 애들 알지? 남자애 둘이라서.. 미안해서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