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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May 15. 2022

# 16. 술과 친구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 16. 술과 친구


정호의 월급날.....

월급날만 되면 정미는 예민해진다.

이래 저래 각종 공과금 통장에 정호의 용돈통장에 생활비 통장에 돈을 보내고 나면 다시 한숨이 난다.

시댁에 보낼 40만 원...

-정미: 이건 일단 내일 보내자.

항상 같은 날 같은 금액을 입금하면서도 정미는 망설이게 된다.

보내기 싫어서가 아니다.

당연히 보내야 될 돈이지만 빠듯한 생활비를 생각하면 조금 줄여 보내드려도 괜찮을 텐데,

둘째 형님네는 10만 원밖에 안 보낸다고 하던데..

자기가 장남도 아니고 장남보다 더 많이 보내는 이유가 뭔지..

또 시댁 험담을 구시렁대면서 자신을 나쁜 며느리로 만드는 정호가 짜증 났다.

정호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정미는 늘 수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월급날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매달 겪는 일이기에 정호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미는 또 신경질을 내기 시작하고 민호와 준호는 아빠의 월급날만 되면 자신들도 모르게 조용히 방에서 놀게 된다.



-정미: 자기야 나 할 말 있는데..

-정호: 됐어. 또 돈 이야기면 이제 그만하자.

-정미: 이달에 자동차 세도 내야 되고 돈 나갈게 많단 말이야. 이달만이라도 20만 보내드리면 안 될까?

-정호: 뭘 얼마나 쓰길래 자동차세 낼 돈도 없어?

-정미: 뭘 얼마나 쓰냐니? 이달은 애들 옷 한 벌도 안 샀어. 작년에 입던 잠바 그대로 입고 다닌다고.. 식대밖에 더 들어가? 외식도 몇 번 안 했잖아. 얼마나 쓰냐니? 그걸 말이라고 해?

-정호: 밖에서 친구들 만나서 얼마나 썼어?

-정미: 뭐? 나참 기가 막혀서. 술값은 미현이가 냈어. 그리고 자기는 용돈이라도 있지 내가 용돈이 어디 있어? 말을 왜 그렇게 해? 내가 맨날 술 쳐 먹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두세 달에 한 번씩 친구들 만나는 건데.. 그리고 친구들 만나서 내가 술값 낸 적이 몇 번 있는 줄 알아? 자기 너무한 거 아냐?

-정호: 너무하다니? 내가 뭐가 너무해? 내 월급 빤한 건데 뭘 어떻게 해야 되니? 투잡이라도 뛰라는 거야?

-정미: 큰형님네는 30 보낸다더라. 작은 형님네는 10만 원 보낸데.. 자긴 장남도 아니면서 40이나 보낸다는 게 말이 돼?

-정호: 왜 말이 안 돼?

-정미: 우리 집엔 왜 안 보내 드리는 건데?

-정호: 너 진짜? 계속 이럴 거야? 장인어른은 아직 일 하시잖아.

-정미: 우리 아빠 퇴직해도 자긴 돈 안 보낼 거잖아. 내가 안보 내드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줄이 자는 건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정호: 그럼 네가 나가서 더 벌어. 그러면 되겠네

-정미: 야!! 김정호!!

정미는 화가 났다.

반복되는 싸움이고 또 반복되는 싸움의 이유겠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정호가 미웠다.



정미는 안방으로 가더니 옷을 갈아입었다.

더 이상 정호와 한 공간이 있기 싫었다.

미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미: 미현아 나 좀 위로해주라

-정미: 왜 또? 싸웠어? 오늘 15일이구나. 에구.. 집 앞으로 갈게 나와.

정미는 코트를 걸치고 나왔다.

-정호: 너 지금 나가면 다시는 못 들어올 줄 알아!!

정미는 정호를 노려보며 무언의 욕을 했다.

‘나쁜 자식’

신을 신고는 현관문을 최대한 세게 열고 세게 닫았다.

현관문은 쿵 소리를 내며 닫혔고 거실 창이 흔들렸다.

정호는 화가 났다.

자신을 조금만 더 이해해주길 바랬지만 정미는 그러질 못했다.

늘 반복되는 싸움을 끝내고 싶었지만 늘 같은 식의 끝맺음이다.




정미는 눈물이 났다.

그래도 최대한 태연한 척하려고 애썼다.

친구들에게까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1층에서 5분쯤 기다리자 미현의 차가 들어왔다.

정미는 미현이 반가웠다.

차를 타자 미현이 묻는다.

-미현: 뭐 때문에 싸웠는데? 요즘 자주 싸우는 거 같다.

-정미: 뭐긴 시부모님 때문이지.. 안 그래도 쪼들리는 생활에 생활비 조금 줄여 드리쟀더니 어찌나 성질을 내는지.. 지가 장남도 아니고 형이 둘이나 있는데 장남 노릇은 지가 다 하려고 한다니까.

미현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정미: 너무 효자 남편도 힘들어. 나를 나쁜 며느리로 만들잖아. 민호도 곧 학교 들어가는데 지가 더 벌 것도 아니고 형님들한테 조금 더 내라고 하던가. 둘째 형님네는 십만 원 보내드린다더라. 십만 원.. 우리는 40이나 보내는데 나참 기가 막혀서..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미현은 그저 웃어 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내편 들어준다고 정호의 욕을 하는 미현은 보고 싶지 않았기도 했다.

블루 씨가 보인다.

주말이라 블루 씨 안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미현은 사장님을 보며 웃어줬고 사장은 창가 쪽으로 자리를 내줬다.

미현은 유라에게 전화를 걸어 블루 씨로 오라고 했고 잊지 않고 담배도 주문했다.

곧이어 가게 문을 열고 승주가 들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큰 키에 잘생김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정미: 오랜만... 더 잘생겨진 거 같다.

승주는 미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승주: 그러게 오랜만이네. 너 애들은 어떻게 하고 나왔어?

-미현: 남편님이랑 대판 하고 몸만 빠져나오셨단다.

-정미: 그런 건 설명 안 해줘도 돼. 쪽팔리게 넌....

-미현: 넌 결혼하고 나니 행복해? 난 네가 왜 이렇게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정미: 나쁜 것. 넌 죽을 때까지 혼자 살 거다.

순간 화가 났다.

언제나 묻는 말들은 똑같다.

아이들과 남편은 어떻게 하고 나왔느냐....

나는 그들의 시종이 아니다. 나는... 나일뿐인데...

어찌 보면 그들도 나의 일부임이 맞을 것이다. 내 가족이니까....

결혼해서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행복은 잠깐이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덧 잠이 들 시간이었고 또 아침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들..

아이들의 재롱도 남편의 따뜻한 말도...

그래 행복이라면 행복이겠지..

혼자 사는 너희가 알 턱이 있어? 그래도 나한테는 내 편이라는 게 있으니까...

정미는 섭섭함을 뒤로하고 스스로의 상황을 합리화시켰다.

유라가 들어왔다.

미현은 담배를 찾았고 어느덧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유라는 늘 예뻤다.

단아함이 묻어나는 자태.. 정미와는 다른 이미지다.

오히려 미현은 정미와 비슷했다.

그래서 그런가 정미는 유라를 볼 때마다 그녀가 부러울 때가 많았다.

자신은 갖지 못한 지적인 이미지.. 가벼워 보이는 자신이 싫었다.

시간은 어느덧 11시를 가리켰고 정미와 미현은 서로를 위로하며 울고 있었다.

아직까지 정호는 전화가 없다.

싸우고 나갔는데도 걱정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내편인데... 가족인데...

섭섭함에 더 눈물이 났다.

-정미: 내편은 무슨.. 이러니 남편이라는 거야.. 내편이면 남편이 아니라 내편이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냐??

정미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었다.

승주는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계산을 하고 미현을 부축하고는 차에 태웠다.

정미는 유라의 차에 올랐다.

어느새 정미는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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