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 19. 서로에게 길들여지기--2
정미와 정호 씨가 애들을 데리고 간 후 미현은 초토화된 집을 정리했다.
거실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장식품들을 정리했고 이불과 베개를 털어 옷장에 넣고 쿠션을 정리했다.
청소기를 돌리는 내내 미현은 아직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결혼...
결혼이 이런 거라면 미현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없는 하루에 말 안 듣는 자식들에 내편이 아닌 남편....
고개를 저으며 정미는 다시 청소에 몰입했다.
-미현: 정미는 정말 행복한 걸까?
그렇게 싸우고 나와서 다시는 안 살 것처럼 화를 내고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웃으며 서로를 챙긴다.
반복되는 그들의 삶이 행복일까?
청소를 마무리할 즈음에 전화가 울렸다.
익숙한 이름....
류태호..
미현은 망설였다.
전화를 받아서 뭐라고 하지?
설마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힌 사람이 너냐고 물어봐야 하나?
미현의 고민이 이어지자 전화는 끊어져 버렸다.
한숨을 쉬고는 다시 청소기를 잡으려는 찰나.. 다시 전화가 울린다.
-미현: 여.... 보세요?
-태호: 뭐해?
-미현: 청소 중이야.
-태호: 나 할 말 있는데 나올래? 아님 내가 갈까??
-미현: 어쩌지 나 청소할 것도 많고 좀 쉬고 싶어. 어제 정미네 애들 와서 자고 가는 바람에 집이 엉망이야
-태호: 내가 갈게. 있다 봐.
태호는 전화를 끊었다.
-미현: 뭐야, 다음에 보자는 뜻인걸 모르나?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바닥을 닦으려 하자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에는 태호의 모습이 보인다.
미현은 문을 열며 말했다.
-미현: 오늘 나 정말 피곤한데 꼭 와야 했어?
-태호: 뭐부터 할까? 바닥 닦으려고 했어?
태호는 식탁에 짐을 올려놓고는 스팀 청소기로 바닥을 닦았다.
-미현: 마트 갔다 왔어? 머 해주려고?
-태호: 나 가지고 갈 거야. 눈독 들이지 마라
-미현: 난 또...
미현은 설거지를 했다.
청소가 다 끝나자 태호는 주방으로 갔다.
-미현: 너도 좀 쉬어.
-태호: 스테이크 할 건데 어때?
-미현: 정말 좋지. 거봐. 해줄 거면서..
태호는 요리를 시작했다. 미현은 그의 뒷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럴듯한 냄새가 집 안에 진동하고 있다.
-태호: 야! 너는 손님이 요리하는데 소파에 앉아서 뭐하냐?
-미현: 네가 무슨 손님이야? 내가 하면 요리 망쳐.
-태호: 그럼 난 뭔데?
-미현: 어?........ 그............ 친구지..
태호는 미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미현은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는 주섬주섬 정리하는 척을 했다.
‘친구라고? 뭐야, 친구? 내가 왜 친구라고 했지?’
미현은 자신의 대답에 당황했다.
태호의 요리 솜씨는 정말 훌륭했다.
-미현: 매번 느끼는 거지만, 너 장가가면 니 와이프는 요리 안 해도 되겠다. 네가 이렇게 잘하니까 말이야.
-태호:..................
-미현: 집안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벌어다 주고... 넌 여자 없어? 왜 아직 혼자야?
-태호: 그렇게 왜 내가 혼자일까? 바보같이..
미현은 말을 할 수 없었다.
태호의 눈빛이 뜨거워 온다는 것을 느꼈을 때 미현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미현: 나 씻고 자야겠어. 너도 피곤할 텐데 그만 가라.
태호는 일어나는 미현의 손을 잡았다.
미현은 손을 떼며 방으로 향했고 태호는 미현을 뒤에서 안으며 말했다.
-태호: 나는 너한테 뭘까? 친구? 진짜 친구야? 아님 그냥 가지고 노는 장난감인 건가? 아니, 장난감이라도 좋으니까 이렇게라도 니 옆에 있고 싶다.
미현의 눈이 흔들렸다.
장난감이라도 좋으니 옆에 있겠다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미현은 태호의 팔을 풀고 태호를 쳐다봤다.
태호의 눈빛은 평소보다 더 진지했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태호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미현: 태호야. 내가 미안해. 필요할 때마다 너 찾는 내가 나쁘다는 거 잘 알아. 그런데 나, 너랑은 그냥 친구이고 싶어.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 너,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너한테 그만 상처 주고 싶어서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돼서 많이 미안해. 네가 소중하니까 더 이상 상처주기 싫어.
-태호: 상처 주기 싫다면서 번번이 주고 있잖아. 더 상처 줘도 돼. 상처받아도 널 볼 수 있으니까.. 니 옆에 있겠다는 거야.
-미현: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네가 아픈데 왜 내 옆에 있어!
-태호: 이게 사랑인지 집착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니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다른 사람과 있다가 온 너라도 너니까.. 너라서 아파도 괜찮은 거 같아. 바보 같다는 거 나도 아는데... 적어도 네가 나 때문에 아프진 않으니까 나는 너한테 상처 주지 않으니까 내가 아파도 네가 아프지 않다니까... 말이 안 되는 건 알겠는.....
미현은 감정이 벅차올랐다.
바보 같은 놈.
자신이 상처받아도 내가 안 아프면 상관이 없다는데.. 세상에 이런 바보가 어디 있어.
미현은 태호의 뺨과 눈, 입술을 손으로 어루만졌다가 어깨에 팔을 감고 입을 맞췄다.
태호의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미현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미현의 눈물은 태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태호: 왜 그래? 내가 뭘 잘못 말했어?
-미현: 아니야.. 아니야.. 너 잘못한 거 없어.. 내가 다 잘못한 거야.
태호는 미현을 꼭 안았다.
-태호: 미안해 내가 괜한 말을 한 거 같다. 미안해...
무엇인가가 미현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이 바보 같은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이 아파왔다.
이렇게 아픈 거면... 사랑일까?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도 갖지 못했던.. 가슴 한편이 시리도록 아픈 이 느낌은 분명 태호를 향한 미현의 마음이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미현은 태호를 사랑하고 있음이다.
미현은 알고 있다.
자신이 태호를 사랑할수록 태호는 더 많이 아파할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이 바보 같은 남자는 아파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이 사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미현은 멈추지 않는 눈물이 미웠다.
태호는 미현의 눈물을 닦아주고 미현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더 많이 아프면서도 오히려 상대를 위로하는 이 바보 멍청이...
-미현: 태호야..
-태호: 아무 말 안 해도 돼. 네 마음 이미 알고 있는데 그냥 나 혼자 답답해서 해본 말이었어. 신경 쓰지 마.
-미현: 태호야.. 네가 틀렸어.
-태호: 뭐?
-미현: 널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팠어. 다른 사람 만날 때는 이런 거 몰랐는데 널 만나면 가슴이 시렸어. 이런 게 사랑인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네가 나한테 소중한 사람인 건 분명해. 나도 네가 아픈 게 싫어. 너 바보 아냐? 지는 아파도 나는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말 넌 바보야.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되잖아.
태호는 미현을 다시 안았다.
-태호: 미안... 미안해..
태호는 미현을 보며 웃어주었다. 따뜻한 미소..
왠지 그 미소를 더 이상 못 볼 것 같았다.
태호의 표정이 그랬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이 다가왔다.
-태호: 이제 그만 쉬어. 나 갈게..
미현은 태호의 손을 잡았다. 태호는 미현의 손을 놓으며 웃어주었다.
-태호: 잘 자..
-미현: 가지 마. 가지 마, 태호야.
미현은 다시 태호의 손을 잡았다.
-태호: 나 지금 안 보내주면 다시는 널 안 놔줄지도 몰라.. 그래도 돼?
-미현: 상관없어. 그러니까 가지 마.
-태호: 난 분명히 말했다. 너 안 놔준다고.
-미현: 나도 다시 말할게.. 상관없으니까 여기 있어. 가지....
-태호는 몸을 돌려 미현의 입에 입술을 포갰다.
10년을 넘게 기다려 온 사랑만큼 그동안 맘 졸이며 아파한 만큼 뜨거운 입맞춤이었다.
미현은 태호를 거부하지 않았다.
따뜻하게 더 뜨겁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