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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31. 2023

애도

팩션스토리_사실&허구

강현이가 죽었대.

... ...


강현이가? 그 애는 내 기억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스스로 생을 놓아버릴 어떤 징후도 없었다. 가끔 고개를 숙이고 발끝을 무심히 쳐다보는 일은 있었지만. 하긴 징후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묘사하는 '우울한 사람'이라는 정형화된 상에 내가 너무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강현이를 알던 시절에 그는 친절했고, 남을 잘 도와주었고, 환한 미소를 짓곤 했다. 우리는 자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하릴없이 어울려 다녔다. 그렇다고 과하게 취해 비틀거리는 일은 없었다. 조금 목소리가 커지고, 붉어진 얼굴을 자주 문지르고, 입술에 침을 바르며 눈빛이 부드럽게 풀렸지만, 그 정도가 다였다. 피부가 하얗고 입술이 도톰하고 붉었지. 가끔 그 애의 입술을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술을 마시고 목을 매달았고 했다. 아버지가 그의 시신을 수습했다.


- 장례식장에 같이 갈래?

- 평일이고, 회사에 가야 해서.

- 그렇지.


동기들 중 첫 번째로 죽음을 맞이한 강현이였다. 비탄에 빠진 동기들 몇몇이 연락하여 지방 소도시에 있는 장례식장에 같이 가기로 했고 나에게도 연락을 해 왔다.  나의 장례식장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해도 서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당장 나의 일상을 챙겼다. 같이 학과 강의를 듣고,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고, 학교 축제 때, 주점 주방에서 나란히 서서 전을 부쳤지만. 십 년이 지난 그때, 나는 강현의 죽음이 어느 일반인의 죽음만큼이나 개관적인 사실인 양 여겼다. 


- 나는 못 갈 거 같아.

- 하긴 네가 강현이랑 그렇게 친한 거 아니었으니까.


마음이 유순한 친구가 오히려 나를 이해했다.




우리는 꽤 친했다. 같은 과, 같은 동아리, 대학교 1학년 내내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둘 다 지방에서 올라 와 서울살이가 처음이었고, '만나는 누구든 우리를 좀 안내해 줘.' 기대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즈음에 서로에게 기대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한 번은 우정과 애정 사이에서 손을 잡은 적이 있었다. 내가 먼저였는지, 그 애가 먼저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달큰한 바람이 부는 5월이었다. 아카시아였나, 라일락이었나. 어둠이 채색된 캠퍼스 여기저기, 달콤하게 흐르는 향기와 성 호르몬에 휩싸인 청춘들이 서로를 탐닉하는 시기. 캠퍼스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매년 바뀌지만 그 시즌에는 늘 그랬다. 다들 반쯤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우리는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호르몬 분비만큼은 지극히 평균적이었다. 5월이었고, 공기는 달큰하고. 나란히 걷다가, '언제 이만큼 가까워졌지' 그 사이에 손이 닿았고, 손등의 감촉이 부드러워 몇 번을 더 부딪히다가 손가락들이 하나둘 서로를 감아 안았다. 그리고 땀이 비질비질 배어 나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면서도, 손을 더 꼭 잡은 채로, 어두운 언덕길을 더듬어 내려왔다.


특별히 할 말은 없었고, 머릿속은 이다음 장면을 가늠하느라 바빴던 걸로 보아, 내 마음은 확실했다.  


때르르르릉! '니 운명은 따로 있다!' 신이 있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어두운 방 안에 갑자기 불이 확 켜지듯, 꿈속을 헤매는 중 알람 소리가 울리듯, '따르르릉. 비켜욧!' 자전거가 우리 둘 사이를 갈랐다.


-아, 아앗!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재빨리 손을 놓았다. 어느새 정문이었다. 이제 각자의 주거지로 가야 할 지점.


- 벌써 정문이네.

- 그러게.

- 저......

- 응?

- 아,...... 아니다. 아니야.

- 그, 그래

- 난 이쪽으로 가야 해서.

- 그래, 난 저 쪽.

- 응

-.....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던 그 애는 '아니다, 아니야' 부정을 두 번 하고, 결국 저 쪽 길로 저벅저벅 걸어갔고, 나는 황급히 이 쪽 길로 접어들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냈다. 그렇게 석 달이 흐르고, 1학년 1학기가 끝났다. 그 애는 입대했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친구들이 입대 전 술을 사며 입을 모았다. 그 사이에 껴서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애가 제대했을 때 나는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했고, 마지막 학기는 학점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가 그 애와 학년도 달라 마주칠 일은 없었다. 복학생이 된 그 애가 과후배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 번 본 게 다였다.




친구들이 카톡방에서 대화를 나눈다. 언제, 어디서 만나서 같이 가자고. '잘 다녀오라'는 말을 맥없이 한다. 평일이었고, 나는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는 핑계로. 이 즈음이었던 거 같다. 십 년 전,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아직 겨울이었고 세상은 추웠다. 그때 강현이에게 이혼한 부인이 있고, 자기가 맡아 키우던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을 두고 떠났다고. 친구들은 조각조각 잊힌 강현이의 시간을 이어 붙이고 있었지만, 그 애는 영면에 들었다.


많이 힘들었니. 살면서 그 질문을 나눌 기회는 없었다.


그 애가 떠나고 어느새 또 한 번의 십 년이 흘렀다. 육신이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도탄에 이르면, 영혼은 육신을 떠난다고 한다. 그것이 신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그곳에선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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