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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Oct 29. 2022

건강한 맛, 토요일 아침 루틴

오랜만이다. 약속 없는 토요일 아침. 평소보다 1시간 정도 더 자고 일어난다. 7시 40분. 8시에는 강아지 아침 식사를 챙겨줘야 한다. 12시간 간격으로 심장약을 먹고 있어, 시간을 지켜주는 것이 좋다. 12살 추정 노령견, 심장과 신장이 모두 안 좋다. 신장기능이 악화되지 않도록 인과 칼슘을 제한한 특별 처방식 사료를 먹인다. 그 위에 심장병약(실데나필_비아그라 성분, 피모벤단, 등 혈관확장제와 강심제 성분이 들어 가 있다.)을 솔솔 고명처럼 얹어준다. 안 먹는다. 어쩔 수 없이 신장 처방 습식사료를 한 캔 개봉다. 아껴두던 건데. 습식사료와 비벼주면 식감이 풍부해져 그런지 비교적 잘 먹는다. 12살이면, 사람 나이로는 60세 정도인데, 확고한 자기 취향이 있을 나이. 호불호가 확실해진다. 반려인 쪽에서 맞추는 게 현명하다. 찹찹찹. 경쾌한 취식 소리를 들으니, 음악이 땡긴다.



마샬_Marshall 스피커의 블루투스 온. 갤럭시 21을 사며 깔린 FLO 뮤직앱 정기구독 중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취향 맞춤 곡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준다. 요즘은 60년대 미국 재즈 노래와 케이팝을 섞어 듣고 있다. 사라 의 'A LOVER'S CONCERTO'가 제일 상단에 올라와 있는 추천리스트를 재생한다. 바이올린의 섬세한 떨림이 지나가고 'How gentle is the rain' 가사가 울려 퍼지자, 에너지가 샘솟는다.


세수는 물 세안, 양치하고, 간단히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설거지를 시작한다. 집에선 먹기보단 마신다. 물, 커피, 차, 맥주, 와인, 아주 가끔 우유. 평일 동안 마신 온갖 종류의 컵들이 개수대에 수북이 쌓여 있다. 손 보호를 위해 고무장갑을 껴고 하나씩 착착 씻어 나간다. 생각난 김에 아침 공복 물도 한 잔 마시고. 생각 난 김에 강아지에게 신선한 물도 리필해주고. 설거지 중에 자꾸 딴 일들이 생각난다. 고무장갑을 끼었다 벗었다. 설거지 감이 많지 않은데도 효율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대략 10분 안에 끝난다.

   


다음은 청소구나. 창문을 열어 환기 먼저 시키고, 아파트 앞 동 건물 사이로 앞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졸참나무와 개암나무, 상수리가 많은 숲이다. 군데군데 단풍나무도 섞여 있고, 사철 푸른 소나무와 전나무도 몇 그루. 바람에 나무들이 하늘거리듯 흔들린다. 흐음~ 깊게 공기를 들이마시면 시원한 바람 냄새, 미세하게 흙냄새와 자외선 냄새가 섞여 있다. 인센스를 피우자. 고급 향에는 스파이시가 들어가야 해. 연기의 매캐함이 그립다. 인센스 스틱보다 천연 나무가 좋겠다. 지난여름에 사두고 아직 피우지 못한 팔로산토의 천연 나무 인센스를 피운다.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마침내 붉은 불꽃이 나무 끝자락에 붙고, 회색 연기가 고실고실 털실 마냥 풀려 나간다.



사라  'Misty'가 끝나고, '떠나아~지마! Just stay, 지금 이 시간을 멈춘 채' 블랙핑크의 노래가 흥을 돋운다. 로봇청소기의 파워 버튼을 누른다. 청소는 AI가 탑재되어 있어 청소해야 할 공간을 이미 학습이 되어 있는 상태. 알아서 방 3개, 거실 1개, 24평 아파트에 지난 며칠간 쌓인 먼지를 흡입하고 다닌다. 그 사이 나는 털뭉치 먼지 떨이개로 가구들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강아지 침구를 세탁실에 가져다 둔다. 로봇청소기가 먼지 청소를 마치면, 내가 물걸레 청소기로 바닥에 눌어붙은 강아지 오줌 자국과 사람의 발바닥에서 묻어난 기름기를 닦아 낸다.



인센스 나무가 절반 정도 탔고, FLO 플레이 리스트가 약 10곡 정도 재생될 즈음, 청소가 끝났다. 이 집의 반려식물 몬스테라, 서양 고사리, 소피아 고무나무, 파키라 친구들에게 물을 주고 나면, 토요일 아침의 집안일이 모두 끝난다.



10월 마지막을 향해 가는 공기, 상쾌하고 쌀쌀하다. 크게 한 숨, 들이마시고 거실 창문을 닫는다. 이제 커피를 사러 가볼까. 강아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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