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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Nov 01. 2022

단지

사람이 그렇다. 이렇게 사람들이 '어이없게', '한순간에', '너무나 많이' 불의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 슬프고 애달픈 상황에서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심한다. '나는 안전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민망하고 미안하게도.


그들은 단지 운이 나빴을까?

거리에서, 출근길 지하철 환승통로에서, 연말 보신각 타종 행사장에서, 나는 때때로 거리에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 였다. 그날의 그들은 '나'일 수도 있고, 내 친구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죽은 건 그들이 운이 나빠서만 이었을까?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건 운이 좋아서만 이었을까.

운이 다는 아니었을 것이다. '안전한' 공간에서는 공동체 질서, 보호, 약속이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지켜지고 있었다. 최소한은.


우려가 있었다고 들었다. 계속 민원이 들어갔다고.

여기 사고가 날 거 같다고,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질서가 안 잡힌다고.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인터넷에서 본 것들이 떠올라 슬프고, 아프고, 무기력하다. 괜찮다가도 그런 일이 있었어. 슬픈 장면들이 맴돈다. 외면하면 꿈에 그 두려움이 여러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나타난 건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통 속에, 간절히 그곳을 빠져나가기를, 누군가 와서 이 혼란을 바로 잡아 주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마지막 길을 떠났다.

내 꿈에 나타난 건 내 자신이, 우리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방어기제.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걱정한다. 나와 아이들, 친구들, 부모님, 이웃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인간의 역사에 재난이 끊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사고로부터, 재난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고, 늘 방법을 찾아왔다. 그들의 죽음 뒤에 그 방법을 찾게 되어 그저 현실이 잔인하고 또 잔인할 뿐이다.


나는 수많은 잠재적 위험 속에서 어쩌다 살아남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매 순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믿을 수가 없다. 세상을 살아갈수록 '믿을 구석 하나 없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신념이 강해진다. 내가 틀렸기를 바란다. 믿고 기다리라는 말을 믿고 싶다. 세상이 그런 세상이기를.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당신은 사람이다. 못 다 핀 꽃도 아니고, 안타까운 청춘도 아니고, 당신은 사람이다.
공동체의 안전 속에서 마음껏 숨 쉬고, 웃고, 말하고, 걷고,
그 거리를 나와, 집으로 귀가해야 할 사람이었다.
당신이 못다 간 귀갓길을 열고 싶다,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이태원 참사로 운명을 달리 한 분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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