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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Nov 10. 2022

가을 속으로

곳곳에 가을이 물들고 있다. 격리 해제되고 현관문을 나섰을 때,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더욱 깊어진 가을이었다. 이 일주일 사이에 얼마나 더 가을 속으로 접어들었는지 모르지만, 시간을 크게 접어 성큼 겨울에 다가선 기분이다.


이틀 전 받은 부고에 마음이 더 스산해진 탓일 수도. 지인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삼십 대 중반, 희귀 질환이 발병한 지 일 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떠나게 되다니.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지인을 통해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들으며, 마음 깊이 그녀가 봄처럼 소생하기를, 완쾌하기를 빌어 왔다. 죽음이 일상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코로나로 며칠 호되게 앓고 난 뒤라, 정신이 더 공허했다. 아직 일상 감각이 다 되살아나지 않았다. 종종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같은 허무주의, 쇼펜하우어식 비관론이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얼마 전에 론칭한 신상품의 매출 실적을 뽑으면서, 점심 메뉴로 완자탕을 먹을까, 갈치조림을 먹을까 고민하며, 그 보다 앞서 아침에는 라벤더 색 스웨터를 입을까? 오트밀 색 풀오버 니트를 입을까? 1분만 더 고민하면 지각의 나락에 떨어질 위기 속에서도 그날의 착장과 분위기,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따위를 고민하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녀는 그렇게 떠났는데.' 하는 문장이 머릿속에 팝업창처럼 떠오른다.

 11월만 되면, 연예계 괴담이다, 뭐다 해서 사회적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되곤 했는데 올해는 10월 마지막 날, 도시괴담보다 더 괴담 같은 대형 압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거기에 코로나, 안타까운 부고 소식이 겹쳐 점점 회색 가을이 되고 있다.


불가항력의 삶. 이별, 상실처럼 진폭이 큰 슬픔은 물들기 쉽다.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단풍이라도, 낙엽이라도 봐야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곳곳에 가을이니까. 점심시간에는 회사 근처 산책으로 가을도 즐기고, 오늘의 걷기 미션도 달성하는 것이 좋겠지. 회사 건물 남쪽 현관을 나서면 벚나무와 졸참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이웃하고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내에 근사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니 그곳을 거닐어도 좋겠다.


가을색이 깊어진 나무들은 이제 낙엽이 되기를 막 받아들인 옐로 그린부터 진작에 백기를 들고 가을 한가운데를 향해 달리는 상수리나무의 까멜 브라운, 단풍나무의 브라운 레드, 하늘거리는 억새의 오트밀 색까지, 섬세한 풍경화가 펼쳐진다.'이럴 줄 알고 널 위해 준비했다.' 산책로를 몇 분간 따라 걸었을 뿐인데도, 착잡한 회색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며, 늘은 깊어가는 가을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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