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북스테이

by 구의동 에밀리

회사에서 주최한 ‘힐링 북스테이’에 다녀왔다.

일종의 북캉스 프로그램이었다. 책을 마음껏 읽으면서 연수원의 깨끗한 숙소에 묵고, 끼니때마다 편하게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천국이었다!

사비를 내서라도 이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회사에 그렇게 ‘북캉스’를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요즘에는 성인 중에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이 절반도 안 된다고 하니까. 그런데 막상 이번에 가 보니 최소 몇십 명은 있었다. 선착순이라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왔을까? 다들 넷플릭스만 보는 척하더니, 위선이었다. 쳇.

선택 프로그램으로 싱잉볼 소리도 듣고, 잔디밭에서 요가도 했다. 아무 걱정 없이 누워서 명상하고, 하늘을 한동안 쳐다보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게, 하늘이 이렇게 높았던가?

책은 <한 달쯤, 런던>을 첫날 다 읽고 <월든>으로 넘어갔다. 월든 호수에서 작가 소로가 마음대로 집 짓고 사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홀로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런던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월든>을 읽다 보니까, ‘이렇게나 자질구레하고 뜬금없는 이야기들도 긴 시간을 들여서 쏟아놓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숫물이 우물물보다 시원했다거나, 밤에 너무 깜깜해서 길을 더듬어 귀가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몇 페이지에 걸쳐서 했다.

하기야, 호숫가에 직접 나무 베어서 오두막 짓고 콩 심으며 사는 삶 자체가 효율과는 동떨어진 라이프스타일인데. 그러고 보니 애초에 바쁘게 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허겁지겁 남들의 삶의 표준을 따라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효율로만 보자면 영국에서의 교환학생은 차라리 안 가는 편이 나았다. 그걸 다녀왔다고 해서 지금 이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던 것도 딱히 아닌 것 같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시기는 아직도 반짝였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때 그곳에서 내가 했던 모든 선택은 나의 취향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이뤄졌지, ‘돈 벌어야 해서’, ‘학점 잘 따야 해서’ 같은 부차적인 목표를 위해서가 결정되지 않았다.

반면에 회사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을 받는다. ‘도대체 왜?’, ‘정말 자신 있어?’, ‘무슨 근거로?’와 같은, 조직에서라면 당연히 오가는 공격적인 질문들. 그런 환경에서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은 도저히 ‘그렇게 할 것이다’로 살아가기가 어렵고, ‘그럼 인제 어쩌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회사 생활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삶에서는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다. 그것이 돈이 될지, 어떤 이득이 될지, 그런 문제들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두어야겠다. 나의 선택과 행동들이 사회가 보기에 흡족한지가 아니라, 나의 취향과 철학과 가치관에 맞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겠다. <월든>의 소로가 남이 뭐라 하든 본인의 뜻에 따라 살았듯이 말이다.먼 미래에 뒤돌아봤을 때, 나의 삶이 충분히 나다운 시간으로 채워져 있었기를, 그래서 후회 없이 마음 편안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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