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을 북북 찢으면서 커리를 얹었다.
“진짜 오랜만에 왔다. 인도 카레 자체가 오랜만이야.”
“그러게. 나도 지난번에 같이 왔을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일본 카레 정도만 먹고.”
“후후, 그치만 오늘은 달달한 카레가 땡겼어. 치킨 마크니처럼.”
만드는 사람은 분명 ‘건더기를 많이 넣으면 좋아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재료를 더 넣어주었을 텐데. 희한하게 인도 카레를 먹을 때는 건더기보다 국물(?)에 더 손이 간다.
“입덧은 좀 괜찮아? 이쪽은 양고기 카레인데.”
“응, 맛있당! 이제 좀 안정기에 접어들었거든.”
“벌써? 그럼 내년이면 휴직도 들어가겠네.”
“그렇지. 회사를 한참 다니다가 한동안 안 다닐 거라고 생각하면 좀 신기하기도 해.”
“하긴, 우리 학생 때는 늘 방학이 있는 삶을 살아왔잖아? 한 번쯤은 끊어가는 것도 그 자체로 좋다고 생각해. ‘필요하다’, 라고도 생각하고.”
‘방학’ 이야기를 들으니, 최근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있잖아, 지난 주말에 <나는 4시간만 일한다>라는 책을 읽었거든? 저자가 말하기를, 직장인은 아무리 8시간 걸릴 일을 효율화해서 4시간으로 줄인대봤자 또 4시간짜리 업무가 추가로 쌓이는 법이래.”
“현실적이네.”
“그래서 결국 회사원은 책상 앞에 8시간 앉아 있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야. 뭐랄까, 조금 경종을 울렸달까?”
“경제경영 책을 읽는구나? 나는 연애소설을 좋아하는데.”
연애소설?
그 말에, 최근에 내가 읽은 책 중에 연애소설이 있었는지를 떠올려봤다. 소설, 에세이, 과학 도서, 심지어 전래동화전집까지 다양하게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애소설을 안 읽고 있었다.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라는 SF 소설을 읽었는데, 이것도 쳐줄 수 있을까?
물론 연애소설 ‘비슷한’ 건 읽고 있었지만.
“오, 연애소설이라면……. 난 맨날 로판만 보는데.”
“로판?”
“로맨스 판타지라고 있어.”
“아! 빙의하고 회귀하는 거?”
“어? 어떻게 알았어?”
“난 그건 책이 아니라 시리즈로 보지! 결제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말이야…….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연애소설처럼 푹 빠지게 되더라구.”
로판 독자를 현실에서 만나기란 흔치 않아서, 우리의 대화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서도 계속되었다.
“약간……. 퇴근하고 나서 급속하게 현실도피로 전환하고 싶을 때 보는 용도가 있어.”
“맞아, 그런 면에서는 일종의 마약이나 다름없달까……. 추천해 줄 만한 거 있어?”
“<에보니>라든가, <악역의 엔딩은 죽음 뿐>, ……”
“아 잠깐, 회사 사람들 많으니까 이따가 메신저로 알려줘어…….”
작품 제목이 부끄러울 정도로 유치하고 적나라한 로판의 세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건 10대 소녀들 타겟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지만, 한참 오산이다. 돈줄을 쥐고 있는 자들은 30대 대기업 직장인 여성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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