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하면 실망도 하게 된다는 말.
개인적으로는 이게 단순히 인터넷 명언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이론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답도 없는 상황에 처할 때는 기대 자체를 일찌감치 포기하곤 한다. 그 상황이란 것이 ‘환경’이든, ‘사람’이든, 아니면 어떤 ‘문화’이든 상관없이, 잠시 무념무상으로서 순순히 갇혀 있기로 마음먹는다.
희한하게도, 그러면 또 그럭저럭 살아진다. 여행 가서 묵는 숙소에 세안 비누를 깜빡하고 안 가져갔다면, 그냥 화장을 지울 때도 바디워시에 거품 좀 내서 지운다. 물건을 챙기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거나, 숙소에 세면용 비누도 비치되어 있지 않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기분만 상한다. ‘씻으면 됐지~’ 하고 진작에 샤워를 마치고 개운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뒹굴대는 편이 훨씬 낫다.
그 밖에도 대체로 어디든 던져 놓으면, 그 장소가 코를 찌르는 악취로 가득하거나 건강이 우려될 정도로 비위생적이지 않은 이상 그런대로 잘 적응하는 편이라고도 생각한다. ‘졸리다’ 싶으면 지하철에서도 잘 자고, 밥도 주는 대로 잘 먹고, 사람 북적이는 데서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알아서 인파를 헤치고, 회사 일도 주어지는 대로 어느 정도 하려고 하고. 물론 능력이 역부족인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런데 아직도,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조절하는 측면에서는 서툰 것 같다.
물론 애초에 기대치가 없던 사람의 입에서 역시 수준 이하의 발언이 나오면 그러려니 하지만, 철석같이 믿던 사람이 뜻밖의 이야기를 하면 혼란스러워진다. 깨끗하다고 믿었던 홍시 한 알을 베어 물었더니 애벌레가 슬슬 꿈틀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고 돌이켜 볼 때가 되어서야, 내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라는 사실을 간과했음을 깨닫는다. 나 자신도 불완전한 사람이고 때때로 실수를 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이따금 머릿속이 뿌열 때가 있고 감정적인 상태가 될 때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어쩌다 나온 실수 한 두 개를 가지고 나는 오만하게도 한 사람을 평가절하한 셈이었다.
문득,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에 대해서 실망할 때가 종종 있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실수 하나, 혹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고치지 못했던 반복적인 어떤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렸을 수 있겠구나.
그런데 만약 그때의 상대방이, 내게 얼마나 실망했는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털어 놓았다면?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정말 그랬단 말야?’ 하는 말이 왠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그 많은 실망들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뤄졌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두려워지기도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서 미움을 사고 싶지는 않다.
MBTI ‘N’형인 사람은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고 산다는데. 역시 이런 걱정도 내가 ‘N’형이라서 하는 걸까?
모든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려는 시도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늘 누군가를 실망시키지는 않을까 초조해 하는 자신을 보면, 아직 단단한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나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 우선은 나부터가 행여나 다른 사람을 멋대로 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노력부터 기울여야겠다. 누군가가 실수를 하면 실수였다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남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하지만 열심히 해보려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꼭 잊지 말아야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조금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또 조금은 덜 불안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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