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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Sep 16. 2024

Ch.04 상단주 멜리사의 세 가지 선물 (1)

~ 여행자 숙소 ~


검은색 화면과 그 위에 적힌 문구가 사라지자, 이 곳이 여행자 숙소임을 알려주는 메세지가 뜬다. 배경은 어느 새 여행자 숙소의 방으로 바뀌어 있다.

엘레나는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 이 게임에서는 상호작용으로 ‘눕기’도 되는구나? 맨날 걸터앉기만 했는데, 조금 신선하다.


[엘레나]

으으, 역시 머리가 아프네……. 지금이 몇 시지? 해는 뜬 것 같은데.


엘레나의 대사가 끝나고, 창문 쪽에 반짝이는 화살표가 표시된다. 화살표 쪽으로 다가간다. 실제 나리엔 마을의 모습이 창 밖 풍경으로 보인다. 아침이 되었는지, 하늘에서는 햇빛도 비추고 있다. 이거, 여행자 숙소에서 ‘방’만 따로 떼어서 나리엔 마을 맵 쪽으로 구현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로시가 쪼로로 달려와서 엘레나에게 말을 건다.


[도로시]

엘레나, 일어났어?


[엘레나]

일찍 일어났네? 제이크는?


[도로시]

나는 아~까 전에 일어났지!

제이크는 먼저 식당에 내려보냈어. 내가 엘레나 깨우고 갈 테니까, 자리 맡아 놓으라고 했거든. 


[엘레나]

그래? 그럼 얼른 옷부터 갈아입을게.


[도로시]

응! 옷 갈아입고 1층 식당으로 내려가자. 


도도도 뛰어가는 도로시. 

대사가 그랬으니까, 아무래도 외출복으로 갈아입어야겠지? 잠옷 입고 나가면 어떻게 되려나 궁금하지만, 귀찮음이 호기심을 이겨버린다.

인벤토리를 뒤적여보니 외출복처럼 생긴 옷은 <초급 사제의 옷> 딱 한 벌밖에 없다. 옷을 갈아입고, 아까 도로시가 나간 문을 지나서 계단으로 내려간다.

1층으로 내려가니 어제 본 식당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성업 중이다. 식당의 한 구석에 제이크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4인석 테이블의 창가 쪽 자리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여유롭게 창 밖 풍경을 구경하고 있다.

그 때,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누군가가 제이크에게 다가온다.


[???]

어이,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밥도 안 먹고.


[제이크]

응?


제이크의 시선이 낯선 목소리를 좇는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을 가진 여성이 접시를 든 채 제이크를 내려다보고 있다.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지만, 어쩐지 눈빛도 그렇고 호탕해 보이는 분위기의 인물이다.


[???]

뭐야, 신입인가? 이런 붉은 머리는 본 적 없는데.


[제이크]

신입?


[???]

이상하네, 신입 들어오면 루시가 얘기를 안해줬을 리가 없는데. 

그나저나, 거기 꼬마!


[종업원]

에? 저 꼬마 아니거든요!


[???]

크, 귀엽네! 갈색 고수머리에 똘망똘망한 눈이라. 똑부러지게 생겼어.


[종업원]

으으, 또 꼬마 취급을…….


[???]

주방에 가서 스페셜 디저트 두 판 만들어 달라고 전해줘. 여기 이건 팁으로 받고.


[종업원]

티, 팁으로 천 골드나……?! 시급이 50 골드인데…….


[???]

뭐해? 받지 않고. 

아, 여기 이제 팁 안 받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었나?


[종업원]

아닙니다! 분부대로 주방에 다녀오겠습니다, 상단주님.


종업원의 깍듯한 대우에, 정체 모를 여인이 만족스럽게 씩 웃고는 제이크에게 몸을 돌린다.


[제이크]

상단주?


[멜리사]

아? 아직 몰랐나? 내가 자네 상단주, 멜리사야.

아니, 잠깐만. 가만 있어 보자……. 


[제이크]

……??


[멜리사]

에엥?! ‘불의 드래곤’ 아니야?


[제이크]

오호, 상단주라더니. 역시 보는 눈이 있는…….


제이크가 감상을 마치기도 전에, 도로시가 뛰어와서는 어깨를 팡팡 치며 말을 끊어버린다. 그 뒤로 엘레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다.


[도로시]

아하하! 안녕하세요, 상단주님. 

호옥시 제이크 이 자식이 무슨 헛소리를 하던가요?


[제이크]

아야! 인사보다 주먹이 먼저인거냐?


[멜리사]

호오, 정체를 비밀로 하고 있는 ‘불의 드래곤’과, 붉은 머리를 가진 귀여운 마법 소녀라니. 옆에 계신 분은 그럼 힐러 포지션인가?


[엘레나]

네? 그걸 어떻게……?


[멜리사]

크하핫, 이거이거 굉장한 조합인데?

거기, 꼬맹이!


[종업원]

부르셨습니까, 상단주니임?


[엘레나]

대놓고 꼬맹이라고 불렀는데도 헤실거렸어……?


[멜리사]

주방에 가서, 스페셜 디저트 두 판 더 주문 넣어줘. 

가는 김에 이걸로 디저트 계산도 해주고, 거스름돈은 가져.


[종업원]

넵! 분부 받잡겠나이다.


[멜리사]

거기 두 분도 어서 앉으시지 그래? 디저트 나오기 전에 통성명이라도 하자구.


[제이크]

그래그래, 꼬마 마녀랑 천사님도 앉아. 어차피 이제 내가 ‘불의 드래곤’인 걸 알게 됐으니까, 같은 편이나 마찬가지잖아?


[도로시]

어후, 진짜!


[멜리사]

아하? 힐러님은 별명이 천사님이신가?

아무튼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아주 영광이야! 나는 ‘붉은날개’ 상단의 상단주, 편하게 멜리사라고 불러. 


[도로시]

누, 누구 마음대로 편하게 부르…….


[종업원]

주문하신 스페셜 디저트 나왔습니다!


별명이 꼬맹이가 되어버린 종업원이 스페셜 디저트를 트롤리에 싣고 오는데, 과연 ‘스페셜’한 모습이다. 이름만 디저트였지, 사실상 3단 트레이에 담긴 애프터눈 티 세트다. 


[도로시]

이, 이걸 네 세트나……?


[멜리사]

뭐 해?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앉아서 같이 들자구.

남들은 샌드위치부터 먹어야 한다는데, 난 맨 위에 가장 단 것부터 먹는 게 좋더라~


[도로시]

먹을 걸로 꾄다고 해서 누가 넘어갈 줄…… 어어? 엘레나?


[엘레나]

상단주 님이라고 하셨나요? 우선은 먹으면서 얘기를 좀 들어보죠. 


[도로시]

우우, 엘레나! 길드 마스터로서 위엄을 보여야지!


[멜리사]

아하, 힐러가 길드 마스터라니? ‘불의 드래곤’을 길드원으로 거느릴 정도라면, 굉장한 실력자인 모양인데.


[엘레나]

딱히 그런 실력자 정도는…….

그나저나 도로시도 앉아 봐. 아침은 먹어야지.


[제이크]

음~ 이거 진짜 맛있는데? 괜히 상단주도 맨 위에서부터 먹는 게 아니네.


[도로시]

흐, 흥! 엘레나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멜리사]

그래 그래, 사양하지 말고 들라구.

아참 그리고 요 며칠 상단원들이랑만 지내다 보니 반말이 익숙해서. 괜찮으면 계속 말 편하게 해도 될까?


[엘레나]

네, 상관 없어요. 


[도로시]

도로시도 뭐 딱히…….


[멜리사]

어차피 상단도 금방 출발해야 해서, 아침은 간단하게만 먹을 예정이야. 질질 붙잡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구~


[도로시]

그런 바쁜 분께서, 이렇게 여유를 부리셔도 되는 건가요?


[멜리사]

호기심이 당기는 일은 참을 수 없거든! 참 흥미로운 조합이야. 

어디 보자. 길드 마스터는 힐러, 메인 딜러이자 탱커는 ‘불의 드래곤’, 그리고 딜러 겸 서포터 역할로 화염 마법사일 테고.


[엘레나]

저랑 도로시는 그렇다 치고, 제이크가 ‘불의 드래곤’인 건 어떻게 아셨죠?


[멜리사]

그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알게 되지. 이종족마다 고유한 특질을 가지고 있거든.

잘 봐봐. 우선은 세로로 길쭉한 묘안에,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딱 봐도 특징적이잖아? 게다가 고대의 마력 파동이 미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어. 지금 일부러 기척을 숨겨둔 상태로 보이는데도 말이지.


[제이크]

오, 인간족이 이런 것까지 알다니. 뜻밖인데?


[멜리사]

하하, 별말씀을!

그래도 이 정도는 아카데미를 좀 오래 다녔거나 이쪽 방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어. 다만 ‘아는 것’을 넘어서 실제에 적용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딱 보고 대번에 “불의 드래곤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거야.

지금까지 정체를 들키지 않은 것도 아마 그래서 였을테고.


[제이크]

그럼 상단주님은 어떻게 알았어?


[멜리사]

예전에 한 번 봤거든.


[엘레나]

드래곤을……? 어쩌다가요?


[멜리사]

흐음, 말하자면 좀 긴데. 애증의 관계랄까?


[엘레나]

대체 어떻게 하면 드래곤과 애증의 관계를…….


[멜리사]

그건 그렇고, 힐러님 길드도 델피온 황성 가는 길이야?


[엘레나]

네, 맞아요.


[멜리사]

잘됐네! 우리도 델피온 황성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거든. 이따가 일등마차로 태워다 줄게.

마차를 타고 가도 사흘은 가야 하는데, 새로 사귄 친우를 걸어서 가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엘레나]

좋아요. 도로시는 어때?


[도로시]

응? 아아, 응! 좋아 좋아.


[엘레나]

먹느라 제대로 안 들은 것 같은데……. 


[제이크]

천사님, 나는 안 물어봐?


[엘레나]

당연히 마차에 태워서 가야지. 여기서부터 벌써 ‘불의 드래곤’인 게 들켜 버렸는데, 맨몸으로 뚜벅뚜벅이면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되고 말 거야.


[멜리사]

흐음, 정체를 꽁꽁 싸매야 하는 드래곤이라면 딱 좋은 물건이 있는데. 어디 보자. 


멜리사는 그렇게 말하더니 집게 손가락을 허공에 한 바퀴 빙 돌린다. 그러자 공중에 손바닥만 한 작은 마법진이 생성되면서, 귀고리 한 쌍을 내보내고 사라졌다. 

그런데 스토리상으로 진행되는 대화가 다른 게임보다 훨씬 길다. 이 정도면 아예 게임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수준 아닌가? 그래도 나처럼 여유자적하게 스토리 보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스킵을 휙휙 할 수 있게 되어 있기는 하다. 대사가 다 뜨기도 전에 팍팍 진행시킬 수 있으니, 취향에 따라서는 그렇게 플레이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멜리사]

자, 여기. 드래곤의 특질을 숨겨주는 귀고리야. 

황성에는 별의별 인간들이 있으니까, 정체를 숨기고 싶으면 도움이 될 거야.

혹시 몰라서 챙겨뒀는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네.


[제이크]

오, 이거 이렇게 그냥 주는거야?

귀찮게 구는 인간들이라면 손쉽게 처리해버려도 그만이긴 한데, 어쨌든 고맙게 받을게.


[멜리사]

푸흡, 정말 똑같은 얘기를 하는구나. 


[제이크]

음? 누구랑?


[멜리사]

뭐, 말하자면 옛 친구랄까?

아무튼 그러면 이따가 식사 끝나고 나리엔 중앙 광장에서 보자구. 맨 앞에 붉은 휘장을 단 마차가 보일 거야. 

그럼 난 먼저 실례.


어느 새 스페셜 디저트의 3단 트레이를 다 비운 멜리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먹는 장면은 안 보였는데, 언제 다 흡입했지?

길드원끼리만 남게 되자, 도로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도로시]

저기, 있잖아.


[엘레나]

응? 혹시 마차 타고 가기 싫어?


[도로시]

그게 아니라…… 서빙 테이블에서 더 가져다 먹어도 돼?


[엘레나]

서빙 테이블?


[도로시]

아까부터 사람들이 조식을 가져다 먹는데, 빵 냄새가 너무 좋아. 


[엘레나]

푸흡, 하여간 도로시는 도로시구나. 3단 트레이도 벌써 다 비워가면서.

같이 가서 빵을 좀 담아올까? 마차 시간에 너무 늦지 않으면 되겠지.


[도로시]

와아, 좋아!


~ 여행자 숙소의 아침 (0%) ~

새로운 퀘스트 발생!

원하는 구성으로 접시를 채워보자. 

(Tip. 4개의 코너를 모두 돌아야 배가 부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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