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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04 상단주 멜리사의 세 가지 선물 (2)

by 구의동 에밀리

도로시의 말이 끝나자, 여행자 숙소의 아침을 구성해보라는 퀘스트가 뜬다. 4개의 코너라고 하니, 아마 접시에 네 가지의 음식을 담으면 되는 것 같다.

퀘스트를 수락하니 엘레나가 멘트를 띄운다.


[엘레나]

그럼, 빵부터 담아 볼까?


[도로시]

와아!


도로시가 먼저 접시가 쌓여 있는 쪽으로 뛰어간다. 그러고는 손에 접시 하나를 들고서 조식 코너를 돈다. 이거 정말 해외 여행이라도 온 기분인데? 게스트하우스를 돌면서 유럽 여행을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시리얼이나 토스트처럼 간단한 메뉴들일 뿐이었는데도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구나.

조식 코너로 뛰어가는 도로시와는 달리, 제이크는 자기는 됐다는 듯한 손짓을 하며 씩 웃는다. 아무래도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3단 트레이를 싹 비우고 조식 코너로 돌진이라니.

어쨌든 퀘스트를 받았으니, 도로시를 따라서 조식 코너로 간다. 접시 더미에 다가가니, ‘꺼내기’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접시를 하나 꺼내들자, 화면 한 구석에 동그란 접시 모양이 뜬다. 포크와 숟가락이 가운데에 그려져 있고, 그 옆에는 네 개의 회색 동그라미가 그려져있다.

조식 코너를 돌면서 음식들에 가까이 가니, 해당 음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뜬다. 우선은 빵 코너부터 가봐야지.


> 갓 구운 크로아상

바삭한 토스트

쫄깃한 식빵

촉촉한 프렌치 토스트


토스트가 아니라 크로아상을 맨 위에 놓다니. 이 게임, 좀 배운 사람이 만들었잖아? 조식에서 나의 빵 취향은 무조건 크로아상이다.

크로아상을 선택하자, 화면 구석에 떠 있는 접시 옆의 회색 동그라미들 중 하나가 크로아상 모양의 아이콘으로 바뀐다. 이런 식으로 네 개의 칸을 다 채우라는 뜻이구나? 엘레나의 접시에도 크로아상이 하나 놓인다.

자, 그러면 이걸로 빵은 됐고. 그 다음은 잼이다!


새콤달콤 라즈베리 콩포트

향긋한 딸기잼

> 달콤한 헤이즐넛 초코 스프레드

작은 단지에 든 벌꿀


이게 만약 현실이었다면 아마 네 가지 잼을 모두 담았을 텐데. 으음, 딱 한 개를 선택하라면 아무래도 독특해 보이는 헤이즐넛 스프레드다! 그런데 이거, 진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은근히 신경 쓰게 되네.

다음 코너는 뭐지?


신선한 나리엔 요거트

치즈와 연분홍빛 햄 슬라이스

따뜻한 소세지와 베이컨

> 폭신한 스크램블 에그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테이블인가? 은근히 탄단지가 철저하네. 아무래도 든든하게 먹으려면 스크램블 에그를 먹어야겠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조식 코너를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메뉴를 고르자니 좀 불편하다. 차림새 자체는 서로 비슷비슷한데, 접시의 구성은 모두가 다르다. 여러 음식을 다양하게 조금씩 담아서 모두 맛보려는 사람부터, 요거트와 빵 한 쪽 만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려는 사람까지 천차만별이다. 쓸데없이 디테일한 게임이네…….

마지막 코너에는 컵과 음료가 잔뜩 놓여 있다.


> 든든하고 고소한 카푸치노

아침을 깨우는 필터 커피

갓 짜낸 오렌지 주스

레몬그라스를 띄운 찬물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카푸치노지! 크로아상과 카푸치노, 조식에서 늘 찾는 최애 조합인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어쩐지 더 반갑다. 개인적인 취향을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은 느낌이다.

카푸치노를 선택하자, 종업원이 엘레나에게 커피를 건넨다. 아, 커피라서 종업원이 타 주는 거야? 주스나 찬물이었으면 엘레나가 알아서 따르는 거고? 정말 쓸데없이 디테일하다니까.


~ 여행자 숙소의 아침 (100%) ~

퀘스트 완료! 보상이 지급됩니다.

[ > 확인 ]


~ 여행자 숙소의 아침식사 ~

구성 : 갓 구운 크로아상 + 달콤한 헤이즐넛 초코 스프레드 + 폭신한 스크램블 에그 + 든든하고 고소한 카푸치노


퀘스트를 마치자, 원래 있던 자리에 화살표가 반짝이고 있다. 다가가서 앉으니 도로시도 자기 몫의 접시를 가져와 앉는다.

접시 한 가득 음식을 담아 온 엘레나와 도로시를 보고, 제이크가 놀리며 말한다.


[제이크]

뭐야, 누가 보면 아무 것도 안 먹었는 줄 알겠어?


[도로시]

그건 네 녀석이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나리엔은 여행자 숙소도 은근 명소라구. 가이드북에서도 ‘조식이 맛있는 숙소’로 소개될 정도라니까?

엘레나, 얼른 한 입 먹어 봐.


~ 여행자 숙소의 아침식사 ~

구성 : 갓 구운 크로아상 + 달콤한 헤이즐넛 초코 스프레드 + 폭신한 스크램블 에그 + 든든하고 고소한 카푸치노

[ > 사용 ]


[엘레나]

음, 정말 맛있는데?


[도로시]

그치그치?!


[엘레나]

왜 가이드북에도 나왔다는지 알겠다. 한 입만 먹어봐도 재료의 신선함이 느껴져.

그건 그렇고, 제이크는 귀고리를 어서 착용하는 게 좋겠어. 상단주님 말처럼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서 정체를 들키지 않았을 뿐인 것 같으니까.


[제이크]

알았어, 천사님.

……자, 어때? 좀 더 섹시해 보여?


[엘레나]

응, 뭐.


[제이크]

아하, 이런 취향이구나?


[엘레나]

……? 잠깐,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제이크]

진심이었구나? 얼굴이 빨갛게 익었어.

이제 천사님 취향도 알았으니, 앞으로 좀 더 분발해 볼게?


[엘레나]

그런 거 아니라니까!!


제이크가 짓궂게 키득거리며, 엘레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아니, 정말 내가 엘레나 성별을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선택했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제이크]

충분히 이해해~

이종족 중에서도 드래곤은 준수한 외모를 타고나는 경우가 많잖아?

게다가 이렇게 붉은 머리와 날카로운 눈매라니, 나리엔 마을 축제에서 인기 폭발이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지~


[도로시]

무슨 소리야, 정말.


[제이크]

아쉽게도 이 쪽은 전혀 안 통하는 모양이지만.


[엘레나]

아무튼!

상단주님이랑 약속한 시간이 있으니까, 아침 먹는 대로 출발하자.


[도로시]

히잉, 아쉽다. 하루만 더 있으면 좋을 텐데. 뭐든지 꼭 적응될 쯤이면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것 같아.


대화가 끝나자, 접시도 어느새 텅 비어 있다. 그런데 내 머릿속도 텅 비어 있다. 상단주가 어디서 보자고 했더라……?

퀘스트 목록을 둘러봐도 안 보이고, 어디 방향을 가리키는 지표도 없다. 식당을 빙글빙글 돌아보지만, 단서가 전혀 없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서, 도로시에게 말을 걸어본다.


[도로시]

상단주님이 나리엔 중앙 광장이라고 하셨지?

어서 가 보자!


휴우, 다행이다. 역시 단서가 없을 때는 캐릭터들한테 말을 걸어봐야 한다.

기억을 더듬어서 중앙 광장으로 가야겠다. 정말 이제야 좀 나리엔 마을 지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 같은데, 떠나야 한다니 조금은 아쉽네. 다음에 또 오지 뭐.


~ 나리엔 마을 ~


나리엔 마을은 어제와 변함 없이 평화로운 모습 그대로다. 다만 중앙 광장에 줄지어 늘어선 상단 마차의 대열이 눈길을 끈다.

맨 앞의 마차에는 붉은 휘장이 달려 있다. 대상단의 상단주가 타는 마차 치고는 화려하지 않지만, 어쩐지 만듦새 자체는 아주 견고해 보인다.

마차 곁에 서 있는 상단주 멜리사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어본다.


[멜리사]

때 맞춰 왔네!

오, 이 쪽은 귀고리도 벌써 했고 말이야? 이제 아주 감쪽같아!


[제이크]

그럼그럼, 덕분에 매력어필도 좀 했어~


[멜리사]

매력? 오호라, 어디보자.

둘 중 누구였을까나?


[엘레나]

진짜, 무슨 소리야……!


[멜리사]

아하? 역시 괜히 힐러님이 이런 강력한 길드의 마스터였던 게 아니었구만?

불의 드래곤을 매료시키는 마성의 소유자~


[엘레나]

하아, 상단주님…….


[멜리사]

농담, 농담~

그나저나 소개를 할게. 이 쪽은 내 수행비서, 루시. 마차는 루시랑 같이 타고 갈 거야.


[루시]

안녕하세요, 루시라고 합니다.


루시라고 본인을 소개한 사람은 노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여성이다. 귀가 뾰족한 것으로 봐서 아마도 엘프 같다. 옷차림은 분홍색인데, 딱 봐도 마법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언뜻 봐서는 가냘픈 소녀의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똑부러지고 강단 있어 보여서 묘한 인상을 준다.


[도로시]

와아, 엘프는 듣던대로 미인……. 헙! 죄송해요,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라 그만.


[루시]

정확히는 휴먼-엘프입니다만, 어찌 되었든 괜찮습니다. 엘프가 사람들 틈에 섞여 사는 게 드문 일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저는 멜리사님에게서 일전에 은혜를 입은 적이 있어, 현재는 보좌를 하면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있습니다.


[멜리사]

에이, 은혜는 무슨. 나야말로 유능한 비서 덕분에 머리 아픈 일들일랑 훌훌 잊고 지내는걸?

자자, 그러면 인사는 이쯤 나누고. 슬슬 출발해 볼까?


멜리사가 뒤쪽의 마차 대열을 향해 손짓하자, 두런두런 한담을 나누며 출발을 대기하던 상단원들이 각자 제 위치를 찾아간다.

멜리사와 엘레나, 도로시, 제이크가 마차에 올라타고, 마지막으로 루시가 대열을 다시 한 번 체크한 뒤 탑승한다.


[멜리사]

누추하지만 다들 모쪼록 편하게 앉아 가라구. 걸어서 가는 것보다야 훨씬 편할 테니까.


[엘레나]

네? 아니, 누추한 정도가 아니라……. 다섯 명이 앉아도 자리가 남는데요? 게다가 죄다 고급 소재로 마감되어 있고.


[제이크]

게다가 이 마차, 무진동 마법이라도 건 거야? 하나도 덜컹거리지가 않아.


[멜리사]

역시 드래곤이라 그런지 뭘 좀 아네!

지붕 아래에 최고급 마정석이 하나 설치되어 있는데, 루시가 어디서 배워와서는 무진동 마법을 새겨줬어.


[제이크]

진짜? 그거 엄청 정교한 세공이 필요해서, 아무리 혼혈 엘프라고 해도 마력 소모가 엄청났을 텐데. 대단한걸?


[루시]

과찬이십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멜리사]

덕분에 나는 항상 편하게 다니지. 우리 상단원들이 고생이고.

그래서 말인데, 길드 마스터님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엘레나]

부탁이요?


[멜리사]

우리 상단원들한테 광역 힐을 좀 지원해주었으면 하는데. 무리는 하지 말고, 되는 데까지만 말이야.


[엘레나]

음……. 할 수만 있다면야 도와드리고 싶은데, 광역 힐은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사제 출신이라서 그런 전투용 광역 기술은 배운 적이 없거든요.


[멜리사]

기술?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어.

그래서, 우릴 좀 도와주지 않겠어?


[엘레나]

방법만 있다면야 물론이죠.


[멜리사]

오케이, 거래 성사인 걸로!

루시, 준비한 보석들을 꺼내줘.


멜리사 옆에 앉아 있던 루시가 허공에 집게손가락으로 원을 그린다.

멜리사가 제이크의 귀고리를 꺼냈을 때와 같이, 공중에 작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마법진은 빛을 내며 상자 두 개를 내보낸 뒤 금세 사라졌다.


[멜리사]

자, 이건 힐러님 꺼. 그리고 이거는 우리 꼬마 마법사님 꺼.


[도로시]

아? 도로시 것도?


[멜리사]

부탁한 것도 맞지만, 선물이기도 하거든. 선물인데 한 명만 빼먹으면 서운하잖아?

열어 봐.


[엘레나]

이건…….


상자를 열자, 금색 팔찌가 조용히 빛나고 있다.

이거, 득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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