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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_눕눕 생활과 롱런의 기록

글쓰기, 때로는 버티는 기술이 됩니다

by 구의동 에밀리

안녕하세요. 책 쓰는 엄마, 구의동 에밀리예요.


앞선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익히 아시겠지만, 저는 전업 작가가 아닙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육아휴직 중입니다만, 원래는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9-6제의 평범한 직장인이었지요. 그런데도 책을 올해에만 두 권 출간했고, 연말에 한 권 정도 더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많은 지인들이 신기해 했습니다. “대체 무슨 시간에 책을 쓴 거냐”, “정말 성실하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오히려 글쓰기라는 사이드 프로젝트가 직장인 또는 주양육자로서의 본업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곤 했습니다. 천성이 성실해서 책을 썼다기보다는, 책을 씀으로써 장기적으로 지치지 않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쪽에 가깝다고 제 자신은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겸업작가가 본업에서 롱런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 ‘타인의 콘텐츠만 소비할 것인가?’라는 의문


가장 최근에 낸 책, 『널 품고 누워서 창밖의 눈을 보았지』를 집필할 때는 바야흐로 임신 후기였습니다.


‘자칫하면 아기가 일찍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늘 노심초사하며, 침대에 그저 누워서만 지내던 하루하루였지요. 그렇게 누워만 지낸 기간이 두 달여 되었는데요. 아마도 그때 넷플릭스만 보고 게임만 주구장창 했더라면 아마 정신적으로 못 버텨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제가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게임을 하긴 했지만요……. 그래도 완전히 하루종일 타인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에만 시간을 보냈더라면, 아마 허무감에 지쳤을 지도 모릅니다.


여기에는 마치 여행과도 비슷한 면이 있지요. 어쩌다 2박 3일 정도 떠나는 해외여행은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롭게 느껴지지만, 일주일 이상 길게 체류하게 된다면 스멀스멀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지요. ‘난 여기서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 ‘이렇게 돈만 쓰고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나도 여기서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다’ 등의 생각과 함께 말이지요.


저는 임신 후기에 거의 매일 블로그로 포스팅을 남기면서, 소모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은 않다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은 수많은 댓글을 보며, 제 글이 다른 눕눕 임산부들께 심적으로 위로가 되고 현실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었지요.


지금은 책으로 엮여 나온 당시의 포스팅이, 그 글을 쓰던 시간이, 날마다 제게 준 것은 아마도 ‘자기 효능감’일 것 입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생산적인 사람이고, 가치 있는 활동을 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 자각이었지요.



| 나의 오늘을 작품으로 만드는 방법


임신 후기뿐만 아니라, 회사 생활을 할 때도 글쓰기는 제게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휴직 전까지 제가 주로 쓰던 글은 회사 생활 에피소드였습니다. 그날 있었던 회사 이야기 가운데 짧은 에세이로 쓸 만한 것 하나를 퇴근길에 고르곤 했습니다. 덕분에 지하철에 몸을 싣는 시간은 저의 하루 중 반가운 축에 속하는 시간이 되었고요. 지하철에 빈자리가 없어도 즐거운 퇴근길이 될 수 있다니, 나름대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퇴근길 글쓰기가 루틴이 되었더니,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 머릿속에는 ‘에피소드 안테나’가 백그라운드 프로그램처럼 돌아갔습니다. 후베에게 카레를 사줬다는 둥 몹시 소소한 일부터, 사장님과 식사한다든지 아니면 닌텐도를 들고 와서 동료와 점심시간에 게임을 했다든지 하는 독특한 일까지 모두 제게는 그날의 에세이 소재가 되었거든요.


기쁜 일, 서글픈 일, 빡치는(!) 일……. 직장 생활을 한다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별의별 일을 겪을 때마다, ‘이 또한 글감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사실이 자동으로 상기되었습니다. 글을 쓰지 않던 시절이었다면 그저 무미건조한 하루를 쳇바퀴처럼 굴리고 말았을 텐데 말이지요. 10년 가까이 한 회사에 다니면서, 감정적으로 가장 활기차게 지낸 시기는 아마도 바로 그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의 내 시간이 ‘글감’이라는 쓸모를 가질 것임을 매 순간 느끼는 삶. 그것이야말로, 본업이 따로 있는 겸업작가가 현생을 건강하게 롱런하는 이유가 아닐지 싶습니다.




1. <널품창>의 독립출판 이야기는 연재 형식으로 올라갑니다.


2.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널품창>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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