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것은 죽음과의 싸움이었다”
안녕하세요. 책 쓰는 엄마, 구의동 에밀리예요.
앞서 소개드린 것처럼, 저는 고위험 임산부로서 눕눕 생활을 하며 지낸 이야기를 에세이집으로 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블로그였지요. 저는 원래 블로그에 맛집 탐방기 등을 올리는 일이 취미였는데, 누워서 임신 기간을 버티다 보니 자연스레 주제는 눕눕 생활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댓글로 어떤 분이 그런 글을 남기셨더군요. 본인도 저처럼 눕눕으로 버텨야 하는 처지가 된 산모인데, 눈물로 하루하루 지새우다가 제 블로그를 보고 ‘이렇게도 지낼 수 있구나’ 하고 깨달으셨다고 말이지요.
그 댓글을 보고, 오히려 저 또한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저는 글쓰기를 통해 힘을 얻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의 심리학
무릇, 글쓰기에는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하지요. 분명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내용인데, 출처가 기억나지 않아서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말씀드릴 수 없는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출산을 하면 뇌도 같이 출산한다는 말이 있다는데, 이제는 좀 더 메모를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메모를 어디에 해뒀는지를 까먹지 않는 수고를 추가로 들여야겠지만요.
아무튼 글을 쓰는 데에서 오는 치유 효과는 제가 평소에도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있다고 단언합니다. 가장 분명히 느꼈던 것은 아무래도 눕눕 기간에 수필을 썼던 것이었을 테고요. 예를 들어서 『널 품고 누워서 창밖의 눈을 보았지』의 후반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외면하고 있던 감정들을 드디어 직면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가 조산으로 잘못될까 몇 달을 걱정했고, 내 탓으로 뭔가가 틀어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저 누워서 즐겁게 지내며 최선을 다하면 될 뿐이라고 되뇌어왔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견뎌왔던 것은 죽음과의 싸움이었다.’
출산 당일, 아이를 낳고 입원실에 누워서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공포, 불안, 초조, 이런 위협적인 감정들을 몇 달간 침대에 누워서 오롯이 헤쳐나가야 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제가 쓴 연재 에세이는 어쩌면 조산의 공포가 담긴 기록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함께 무너질 것 같던 매 순간, 두려움을 기록으로 다스린 과정이기도 합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양면성이 있듯, 저의 생활을 글로 담아내던 행위에도 복합적인 면모가 있었습니다.
응급실 앞에서 사진을 찍은 이유
조산 위험은 실로 생생하게 다가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든지, 아니면 어디서 귀신이 튀어나올까 무섭다든지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습니다. 한밤중에 배가 뭉치면 곧장 양수가 터질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으로 이어졌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밤에 배가 자꾸만 뭉쳤습니다. 무시하고 잠을 청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궁이 수축했지요. 자정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이대로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겠다 싶어서 옆에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응급실 바로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응급실 정면 사진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응급실 방문 만큼은 블로그에 후기를 올릴 것 같았으니까요.
‘이거 나중에 포스팅으로 올려야지.’
그런 마음을 먹었더니, 신기하게도 응급실에서의 모든 일들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온통 새하얀 것들 투성이인 응급실이니 웬만하면 낯설다고 움츠러들어 있을 법도 한데, 현재를 기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있었더니 어쩐지 제3자의 눈으로 조금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생활이 어딘가 불안하다면, 쓰세요
글을 쓰면 일단은 머릿속에 빙빙 돌던 표현들을 지면에 꺼내놓게 됩니다. 그러면 과격하거나 좀 오바하던(?) 서술은 알아서 몸을 숙입니다. 경험상, 보통은 부정적인 쪽의 표현들이 주로 그렇습니다. 절망적이라든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수렁이라든지, 그런 말들 말입니다. 뇌리의 뒷골목에서는 떵떵대고 있었는데, 막상 잘 보이는 볕에 나와보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저들이 그렇게까지 떳떳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지요.
종이든, 화면이든, 어디에 쓰는지를 막론하고 일단 지면(이라고 통칭하자면)에 나의 상황을 글로 서술하다 보면 감정을 어느 정도는 다스리게 됩니다. 일단 글로 쓰면, 어쨌든 다른 누군가가 읽을 것을 상정하며 서술하게 되니까요. 그러면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왔던 것보다는 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게 됩니다. ‘진짜 네 표현이 맞아?’, ‘과장하는 게 아니라?’ 하는 식으로, 가상의 독자에 빙의하여 자문하며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글쓰기는 곧 지금의 불안도 언젠가는 지나간 일이 되리라는 결론으로 자신을 이끌어줍니다.
누구나 그렇듯,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서도 지금의 생활에 다소간의 은은한 불안감을 가지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글을 써보시기를 바랍니다.
비공개로 종이에 끄적이는 일기도, SNS에 짧게 올리는 두세 줄 짜리 에세이도 괜찮습니다. 뭐든 쓰기 시작하면 현재 자신의 모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감싸고 있던 부정적인 사고는 덜어내고 희망적인 면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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