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품고 누워서 창밖의 눈을 보았지
안녕하세요. 책 쓰는 엄마, 구의동 에밀리예요.
독립출판 과정에 대해 연재 브런치를 올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책 제목 짓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책 제목은 어떻게 지어지나?
올해 제가 낸 두 권의 책은 모두 살짝 긴 제목을 가지고 있어요. 첫번째는 <돌고 돌아 돈까스>이고, 두번째 책은 <널 품고 누워서 창밖의 눈을 보았지>랍니다. 이 추세라면 다음번 책은 제목이 더 길어질 판인데,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책 제목을 짓기란 의외로 시간도 창의력도 많이 소요되는 작업입니다. 아이 낳고 나서 이름을 지어줄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앞으로 아이가 평생을 살면서 본인을 나타낼 이름인데, 대충 지었다가 원망을 산다든지 할까봐 엄청 고민되더라고요. 작명소가 괜히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더랬죠.
그만큼 책 제목을 확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니, 그전까지는 가제를 사용하며 작업합니다. 아기로 치면 태명같은 존재지요.
느낌 좋은 제목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오프라인 매대에 놓였을 때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목을 단숨에 지어내기는 쉽지 않지요. 우선은 아까 잠깐 이야기했던 가제부터 살짝 마음에 걸리고 말이지요.
| 원죄 말고, 원제와의 갈등
가제는 말 그대로 가짜 이름입니다. 운이 좋으면 진짜 이름이 되겠지만, 대개는 이런저런 고민을 거쳐 다른 이름이 책 제목으로 나갑니다. 물론 처음부터 심사숙고해서 ‘진짜 이름’을 쓰면 좋긴 하겠지요. 그렇다면 나중에 파일명이나 폴더명을 고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제목을 숙려하다가는 막상 글을 못 쓰고 시간을 흘려보내기 십상입니다. 넷플릭스만 해도, 처음에는 완전히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을 프로젝트 가제로 썼다고 하지요. 아마 개똥이었던가……. 아무튼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이 가제는 로컬PC의 워드 프로세서로만 작업한다면 그저 가제로 남게 되지만, 저처럼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으로 연재를 시작하면 원제가 됩니다. <돌고 돌아 돈까스>는 원래 인스타그램에서 #화재의사람들이라는 해시태그로 연재되었고요. <널.품.창>은 블로그에 <눕눕 임산부 일기>라는 카테고리로 올라가던 포스팅 시리즈였습니다.
가제를 이렇듯 대내외적으로 쓰다 보니, 진짜 책 이름을 정할 때는 자꾸만 연재물의 원제가 떠오르더라고요. 마치 그 이름이 아니면 안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화재의사람들’은 아무래도 제가 다니던 회사를 너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다가, 저를 모르는 분들께서는 ‘대체 무슨 내용의 책이지?’ 싶을 정도로 알쏭달쏭한 제목이었습니다. 그리고 <눕눕 임산부 일기>는 감성적인 에세이보다는 웹툰의 제목으로 더 어울릴 것 같달까요…….
책 제목 짓기의 첫번째 단계는 바로, 이처럼 원제와의 내적갈등을 살살 풀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고민이 함께 들어가지요. 예를 들면, 문장형으로 제목을 지을지 결정하는 일처럼요.
| 문장형 제목이라는 트렌드
문장형 제목은 단언컨대 요즘 책 제목의 트렌드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는 무슨 내용인지 감도 안 잡히지만, <정신병원에 나 혼자 정상인>은 듣는 순간 약간 흥미로워지지 않나요?
표지와 제목만으로 잠재 독자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디지털 시대에, 문장형 제목은 톡톡히 마케팅 첨병의 역할을 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웹소설 시장에서는 특히 문장형 제목들이 대세지요. 실제로 <순백의 엘리사벳>이라는 웹소설은 <나쁜 마법사를 길들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바꿨더니 유입이 몇백 퍼센트가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순문학 스타일의 책제목을 더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쓴 이슬아 작가님은, 어떤 책의 제목을 지을 때 편집자와 의견 차이를 보이셨다고 합니다. 엄마와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 편집자는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추천하고, 작가님은 <난자 친구> 등의 제목을 쓰고 싶으셨거든요.
하지만 <난자 친구>라니……. 눈길이 한 번 더 가기는 해도, 매대에서 선뜻 집어들기란 망설여지는 제목입니다. 그 외 여타의 이유로, 결국에는 편집자가 고안한 제목으로 결정되었다고 하지요.
이처럼 제목을 지을 때는, 단순히 ‘문장형이 요즘 트렌드니까’라는 이유보다는 이런저런 요소들을 고민하여 결정하시면 됩니다. 독자가 매대에서 마주치면 집어들고 싶어할 제목일까? 책의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나?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잘 맞나?
물론 마케팅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지요. 특히, 키워드 마케팅 말입니다.
| 제목으로 시작하는 키워드 마케팅
키워드 마케팅은, 말 그대로 검색창에 누군가가 키워드를 입력했을 때 검색 결과로 잘 잡힐 수 있도록 장치를 해 두는 마케팅 방법입니다. 요즘은 도서도 온라인 판매량이 더 많으므로, 무척 중요한 포인트지요.
물론 책 제목으로도 키워드 마케팅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목차 등에 키워드를 잔뜩 심어놓는다고 해도, 정작 책을 찾는 사람들은 검색결과에서 표지와 제목을 가장 먼저 보게 되니까요.
하지만 제목만으로는 키워드를 잘 심어두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제목이 너무 길어지면 깔끔한 맛이 사라지니까요. 그래서 저는 부제를 활용합니다. 책 표지에서 비중은 잘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검색 엔진에서는 충분히 제목과 같은 효과를 내는 요소거든요.
<돌고 돌아 돈까스>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묶어서 만든 에세이집이니, ‘코믹 & 힐링 직장생활 수필집’이라는 부제를 달아주었습니다. 이러면 ‘힐링’, ‘직장생활’, ‘수필집’의 키워드로 유입을 이끌어낼 수 있고, 검색결과에서 ‘코믹’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무겁지 않은 분위기입니다’라고 독자를 안심시킬 수 있으니까요.
<널.품.창>에게는 ‘어느 고위험 임산부의 눕눕 생활과 출산 이야기’를 부제로 달아줬습니다. 제가 조산기 때문에 누워 지내던 시절에 썼던 에세이집이니, 우선은 예상 독자인 ‘고위험 임산부’, ‘눕눕 임산부’를 메인 키워드로 잡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이들이 가장 궁금해 할, 안전하고 건강한 출산 이야기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제에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키워드만 잔뜩 박아넣으면 엉망으로 보이겠지요? ‘고위험 눕눕 임산부 출산 후기’라는 식으로 부제를 지으면 너무 엉성하니, 조금은 손을 보았지요.
| 숙성이 필요한 작명소
앞서 말씀드린 온갖 요소를 고민해가며 짓다 보면, 책 제목을 단시간에 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는 책 제목 짓는데에 할애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기간에 온종일 제목만 궁리하고 있지는 않으니, ‘할애’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요. 사실은 ‘앞으로 대강 보름 동안은 틈틈이 제목을 고민하자’라는 식으로 두뇌를 잔잔하게 가동하고 있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적당한 제목이 번뜩 떠오릅니다. 저는 두 책의 제목 모두, 아침에 머리 감다가 ‘이거다!’ 하고 생각났습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누워서 지내던 임산부 시절이니까, 눕눕이라고 쓸까? 아니, 눕눕이라는 단어는 좀 모양 빠지는데. 그럼 그냥 누워서, 라고 해야겠다. 누워서, 뭘 했지? 겨울이라서 눈 내리는 풍경을 보기도 했지. 그때 참 조용하고 마음 편안했는데. 그럼 눈을 봤다는 얘기를 써야겠다. 내가 쓴 에세이는 평온하고 고요한 느낌이 있으니까, 톤도 얼추 맞고. 그럼, 널 품고 누워서 눈을 보았지? 아니, 창밖의 눈이라고 해야 내가 실내에 있다는 점을 넌지시 알릴 수 있겠다. 좋아, 널 품고 누워서 창밖의 눈을 보았지! ’
| 내려갈 팀은 내려가고, 팔릴 책은 팔린다
책 제목 짓기에 대해 장황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러나저러나 팔릴 책은 팔린답니다.
지난주부터 저는 양귀자의 <모순>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제목은 딱 두 글자뿐인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도 안 잡히고, 키워드 마케팅이니 그런 것은 신경도 안 쓰는 듯한 무심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양귀자 작가가 아니니, 노력해야겠죠?
* 사진: Surendran MP
1. <널품창>의 독립출판 이야기는 연재 형식으로 올라갑니다.
2.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널품창>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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