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950
도쿄에 갔을 때였다. 벚꽃의 만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거리는 가득했다.
부지런히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그 속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던 작은 카페에서 ‘자스민 향이 난다’는 설명을 보고 망설임 없이 원두를 골랐다.
복숭아, 자스민, 브라운 슈거.
THE 1950은 플로럴하고 화려한, 마음을 두드리는 블렌드 커피다.
고품질의 에티오피아 커피 두 종을 혼합해 자스민을 닮은 아로마, 복숭아의 산미, 갈색 설탕의 달콤한 여운을 담았다.
이 커피가 어떤 맛일지, 어떤 향일지, 자스민이라는 꽃의 이미지를 어떻게 담았을지.
그때는 얼음이 가득한 잔에 담긴 아이스로 마셨다.
자스민 향은 은은했고, 커피의 바디감은 또렷하게 남았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따뜻한 물에 추출해 천천히 마셔본다.
같은 원두인데도, 기억과 현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넨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가, 은근한 바디감이 서서히 올라온다.
복숭아를 닮은 산미는 자극적이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오히려 뒤따라올 무게를 조심스럽게 소개하는 듯한 산미다.
입안에는 묵직한 감각이 오래 머물지만, 향이 강하게 남지 않아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진다.
브라운슈가의 단맛이 있지만 여운은 짧다. 전체적으로는 자스민꽃의 우아함을 닮았다.
일반적인 원두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우아함은 본래 조용히 드러나는 법이다. 마치 단어나 목소리 톤에서 자연스럽게 풍기는 품격처럼.
이 커피는 사람을 현혹하지 않는다.
기억에 남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은은하게 스며든다.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묘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하루에 첨가되어 무심히 일상을 북돋아준다.
가끔은 그런 커피가 좋다.
조용하고 단정하게, 내 하루 속으로 들어오는 커피.
도쿄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지금 여기에 머무르게 해주는 맛.
내가 커피를 계속 마시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조용한 스며듦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