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AGASHIHA
시드니 Leibel Coffee에서 사온 Nyagashiha 원두를 오늘 마신다.
카페를 방문했던 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곳은 건물 1층에 위치한, 벽이 없어 바깥 풍경이 그대로 보이는 개방형 공간이었다. 음악소리와 가벼운 대화, 웃음소리, 커피 향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과 시간을 음미하고 있었다. 나는 입구 쪽에 반듯하게 정렬된 원두를 바라보며 이 공간이 기억속 한조각으로 남을것같아 꽤나 설렜다.
원두 봉투를 하나씩 집어 들고 테이스팅 노트를 읽어가며, 내게 가장 어울릴 맛을 찾아 보았다.
Mandarin, Raw Sugar, Tea-like.
이 세 단어가 눈에 들어왔을 때, 나는 머릿속으로 그 맛을 그려보았다.
‘Mandarin’이라는 단어는 레몬이나 열대과일처럼 혀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햇볕 아래 익은 귤의 달큰하면서도 은은한 산미를 떠올리게 했다.
‘Raw Sugar’는 적당한 단맛을 상상했고 아마 만다린의 달콤함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리라 생각했다.
‘Tea-like’는 차처럼 가벼운 목넘김, 입안을 거슬리지 않는 깔끔함정도로 예상했다.
시드니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나를 성장시켰을까? 테이스팅 노트를 보고 상상한 이 맛이 얼마나 현실과 일치할지 기대하며 원두를 구매했었다.
드리퍼는 블루보틀 드리퍼를 선택했다.
유명 바리스타님의 2:4:3 레시피에 따라 30g의 원두로 210g의 커피를 추출했다(뜸 들이기 물 60g 제외). 커피는 반으로 나누어 하나는 따뜻하게, 하나는 아이스 커피로 만들었다.
먼저 따뜻한 커피,
첫 모금에서, 시드니에서 느꼈던 만다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것은 단순히 신맛이 아니라, 부드럽고 풍성한 과일향이 섞인 신맛이었다. 마치 숙소에서 사왔던 귤의 껍질을 벗길 때 퍼지는 그 향처럼 싱그럽고 포근했다. 이어지는 단맛은 흑설탕보다는 달고나를 떠올리게 했다. 살짝 구운 듯한 깊은 단맛이 혀를 감쌌다. 목넘김은 예상대로 가벼웠고, 깔끔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동안, 시드니의 원두를 구매했을때의 공기와 햇살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다음은 아이스 커피.
얼음이 커피를 식히면서 산미가 한층 더 두드러졌다. 첫맛은 따뜻할 때보다 확실히 강렬했다. 하지만 이것은 레몬처럼 날카로운 산미가 아니라, 부드럽고 상냥한 신맛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신 만다린의 느낌이었고, 그것은 입 안에서 달콤함으로 부드럽게 마무리되었다. 혀의 양쪽 끝에서 퍼지는 달콤한 신맛은 여름날 시원한 귤 주스를 마시는 듯한 상쾌함을 주었다.
테이스팅 노트의 단어 하나하나를 통해 맛을 상상하고, 그 상상이 실제 맛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늘 새롭고 재미있다. 이번 Nyagashiha 원두 역시 그랬다.
특히 이 커피는 단순히 맛에 머물지 않았다.
그날 시드니에서의 풍경, 바람, 커피 향, 그리고 그 시간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