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스터리 바이 노지커피
이 커피는 처음부터 낯설었다.
커피 맛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드러웠고,
그렇다고 물이라기엔 향미가 분명했다.
‘물과 차 사이에 커피가 있다’ 는 걸 처음으로 체감했다.
향과 맛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애쓰던 나에게,
이 원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있는 그대로 느껴도 괜찮아. 은은한 것도, 충분히 커피다.”
흰 꽃. 아카시아 꿀.
화이트 플라워 계열의 향이 가볍게 스쳤고,
식어갈수록 주황빛 산미와 초콜릿의 뉘앙스가 천천히 드러났다.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하지만 천천히 머무는 존재감.
이 잔은 기억에 남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그렇기에 더 오래 남았다.
일본의 커피 문화는 어쩌면 차 문화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향을 따지고, 온도를 고려하고, 식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방식.
추출도 ‘드립’보단 침출식에 가까운 여유가 있다.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강하지 않지만 분명한 커피들이.
차처럼 해석하고,
차처럼 기다리는 커피.
이곳에서의 커피는 그렇게 조용했다.
첫 모금부터 강렬했다.
레몬과 만다린이 연상되는 날카로운 산미가 입안을 깨웠고,
그 직후 단단한 초콜릿의 바디감이 바닥을 잡아주며 산미를 잔잔하게 눌렀다.
산미를 강조하는 호주의 커피와는 또 다른 접근이였다.
산미와 바디감이 동시에 밀고 들어오는 균형.
이질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그 강렬함은 문득 도쿄의 색들을 떠올리게 했다.
예를 들면, 전통 기모노의 주황빛 실크.
혹은 시부야와 신주쿠 거리의 조명.
밤이되면 유독 더 화려해지는 도시의 불빛들.
그 주황빛처럼 이 커피도 강렬했다.
산미는 생생했고, 바디감은 따뜻했다.
활기와 안정,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얼음이 녹자, 커피의 표정도 바뀌었다.
노란 산미가 강하게 올라왔다.
처음의 주황빛이 점점 연해지며, 투명한 노란색으로 번져가는 느낌.
맛도 색도 변하지만, 그 변화조차 인상 깊었다.
커피는 때때로 한 권의 소설처럼 느껴진다. 뚜렷한 기승전결과 확실한 문장들에
색과 맛이 겹치고, 흐르고, 스며든다. 그리고 어떤 커피는 그 색감 하나로도, 충분히 기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