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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태도는 아득하다

김행숙 『사춘기』

by 정재광


김행숙 『사춘기』 (2003, 문학과지성사)


대상에 대한 선택적 태도로서 거리두기는 익숙한 방식이다. 멀어지고 경계를 확인하고 혹은 지우기도 하면서 적당한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예 더 드라이브를 걸어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경계를 넘은 뒤 그 문을 닫아버리고 사라지는 일. 죽어버리는 일. 죽고 나서도 시선을 유지하는 일.


처음부터 죽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보이는 너머의 것, 지금 다음의 것을 보려는 노력이 시선의 위치를 자꾸만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이것은 효과가 있다. 살아있을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하고 이해되지 않던 것들을 이해하게 한다. 죽음이 생의 감각기관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을 놓친 다음에만 생을 감각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은 늘 연착한다.


그럼에도 시의 태도는 의연하다. 체념에 빠지지 않는 자조. 자조에 안주하지 않는 유머. 내려놓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귀신이 되어 강간 가해자에게 동정을 보내는 모습에서는 숭고함이 느껴진다. 그 수많은 약하고 아픈 것들을 돌보면서 거기에 보내는 스스로의 시선에 대해 폭력성을 의심하는 데까지 시는 나아간다. 부끄럽다기보다 아득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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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의 극단적 혹은 효과적인 방식으로서 ‘귀신-되기’. 이것은 영리한 판단일까 내몰린 선택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새삼 자신이 무서워졌다. 무지와 각성을 이렇게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니. 심지어 이런 식으로 절망과 자조를 고백하며 구원을 기대하는 일이 가능하다. 자해로 장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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