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글의 아름다움

주시경 선생님의 말씀을 글로 받아 쓰며

오늘은 점심 먹고 광화문 주변을 산책하다가 오랜만에 주시경 마당을 다녀왔다. 이 곳은 건물들 사이에 있어서 잘 눈에 띄지 않아 언제나 한적하다. 한글 연구자료 한 보따리를 들고 서있는 주시경 선생의 머리 위엔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는 말씀이 새겨져 있다. 19세기말에 이미 한자를 폐지하고 순한글만 사용할 것을 주장했을 정도로 혁명적인 생각을 가지셨던 선각자의 글을 곰삭이다가 새삼 우리말을 담는 가장 이쁜 그릇인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주시경 선생께서 1910년에 우리말, 우리글에 대해 쓰신 주옥같은 '한나라말'을 옮겨보며 그 뜻을 새겨보고자 한다.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과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줌으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더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니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잘 닦아지나니라.

그 말과 그 글은 그 나라에 요긴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나

다스리지 아니하고 묵히면 덧거칠어지어 나라도 점점 더 내리어 가나니라.


말이 거칠면 그 말을 적는 글도 거칠어지고

글이 거칠면 그 글로 쓰는 말도 거칠어지나니라.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뒤에야 되나니라.


또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글은 그 나라 곧 그 사람들이 무리진 덩이가 천연으로 이 땅덩이 위에 홀로 서는 나라가 됨의 특별한 빛이라.

이 빛을 밝히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밝아지고

이 빛을 어둡게 하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어두워 가나니라.


우리나라에 뜻 있는 이들이어,

우리나라 말과 글을 다스리어 주시기를 바라고

어리석은 말을 이 아래에 적어 큰 바다에 한 방울이나 보탬이 될까 하나이다.

어느 나라 말이든지 알아 보자하면 먼저 그 소리를 달아야 되나니

우리나라 말도 풀어 보려면 먼저 소리를 알아야 할지라.


- 주시경 '한나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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