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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시시하다.
내가 시시해서일까? 세상이 시시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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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원의 유럽스케치
Sep 11. 2025
간만에 동기들과의 저녁모임
벌써 먼 길을 떠난 친구들도 있고
거동이 불편하여 못나온 친구들도 있고
현역으로 뛰는 친구들도 이제 얼마 안남았다.
다들 어르신이 되어있는데 나만 세월이 빗겨 나간듯
여전히 장똘뱅이처럼 배낭 메고 싸돌아 다니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인 강을 건너는 다리' 인스브룩(Innsbruck) 위에서 인 강을 바라보며
늙음을 업수이 여기고
젊음을 자랑하며 살아왔는데
그렇게 좋은 곳을 많이 다니며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모든 게 다 시시하고 새롭지 않다면
내가 정말로 늙은 것이라는 반증 아닐까?
12번째 봉우리(Zwölferhorn) 위에서 내려다 본 잘츠캄머구트의 전경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야 보배라 했거늘
꿰지도 못한채 쌓여만 가는 구슬들을 보며
나의 게으름과 무능만 탓하다가 어느덧 빈 손으로
이 풍진 세상을 떠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글도 함부로 못쓰겠고 생각만 많아지고 행동은 느려터진
늙은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더이상 파이팅도 안나온다.
장크트볼프강 호수(Sankt Wolfgangsee)의 코끼리 바위는 볼 때마다 영락없는 코끼리의 모습이다!
나는 내가 매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인줄 알고 살아왔고
또 남들도 그렇게 얘기해주니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내가 대단히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역발상을 해보게 되었다. 딱히 반박하기 힘들 정도로
내게서 그런 증거들이 구석구석 발견된다. 곤혹스럽게...
유럽 공동체의 이상을 홍보하는 중유럽의 심장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유럽센터
이렇게 살다가 어느날 훅 이 땅을 떠나도
아무도 모를 것이고 아무런 자취도 남지 않겠지만
초조함이나 조급함 없이 그냥 자존심이 너무나 상해서
이렇게 살다가 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유럽지역전문가의 꿈을 안고 유라시아 대륙을 뻔질나게 넘나들던 그 젊은이
아직 여기 있는데 정말 이렇게 그냥 살다가 사라지려는가!
프랑크푸르트를 떠나며 마인 강 위에서
내가 시시하니
모든 게 다 시시하지만
이렇게 시시하게 끝내기엔
시시하지 않게 살고 있는 내 삶이 아까워
시덥잖은 시라도 한 편 남기도 떠나야 하지 않을까
뒤척이다가 "나 아직 안죽었어!"하는 시시한 글 한 편 남긴다.
아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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