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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립 Nov 01. 2024

그리고 남겨진 것들

BGM
Johnny Stimson - Zombies



다음 생엔 꼭 동성으로 만나 이별 없는 인연을 만들자던 너는 사랑한다며 잘 가라고 내게 인사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보고 싶다며 미련으로 범벅된 메시지를 남겼다. 처음엔 구애였던 마음에도 기어코 시간이 흘러 본능만이 자리를 지키게 된 그 어느덧에 너는 내게 함께 죽자는 말을 했다. 서로를 망가뜨리다 못해 살해하려 드는 너에게 해줄 말이 없어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느덧엔 함께 잠을 자자며 입술을 부볐다. 자꾸만 밀려드는 혀에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아 왈칵 깨물었다. 그제서야 너의 맛이 났다. 피로 얼룩진 입술 아래를 옷소매로 대충 닦아내며 너는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입안에 가득했던 너의 집념과 너의 단념이 한데 섞인 것을 네 얼굴에 뱉었다. 너는 그것을 손으로 닦아 혀로 맛보았다.


서로를 뜯어먹어야 서로를 느낄 수 있었던 너와 나는 또 한 번의 지옥 같은 어느덧을 견디고, 살면서 몇 번 해볼 일 없을 비속어와 상스러운 표현을 퍼부어 댔다. 이래서 식인을 하면 안 되는구나. 이래서 사랑을 먹고 먹여야 하는 거구나, 사람은. 아직도 네가 이따금 혀끝에 끔찍하게 맴돈다. 너는 어디선가 어느덧에 또 닿았을까.

 



한동안 멀쩡한 사지와 충만한 시간으로 괴로워했다. 울리지 않는 전화도, 낭비할 기회가 없는 감정도 모두 지겨웠다. 너에게 잡아먹히던 장기 구석구석이 회복되지 못한 채 썩어가고 있었다. 내 타액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던 네가 혹여나 갈증으로 죽었을까 걱정됐다. 물보다 많이 먹었던 서로의 한숨은 우리라는 관계를 잃자마자 가벼워지다 못해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렸다. 우스웠다. 썩어가는 살갗으로 너를 추억한다는 것이. 


날이 다시 차가워지고 너는 버릇처럼 내 집 앞에 나타나 담배를 피워댔다. 매캐한 연기가 창문으로 스멀스멀 타고 올라왔다. 그게 꼭 나의 공간에 침범하고 싶다는 네 욕정 같아 창문을 닫지 않았다. 네가 다시 나타난 이후 일상은 다시 잡아먹히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인지, 나를 먹고 싶은 것인지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을 즈음이었다. 다시금 떠오르는 태양이 빛을 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먹혀야만 살 수 있는 나와 먹어치워야 사랑할 수 있는 너는 또다시 서로의 다리를 옭아맨 채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는 찬 방의 더러운 침대 위에 누워 물처럼 숨을 들이켰다.




또 시작이다.

너의 진득한 목소리와 나의 우매한 웃음이 한데 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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