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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Jul 27. 2023

베고니아


날이 너무도 화창한 날, 그러나 햇볕이 그렇게 따갑지는 않은 날, 파란 하늘 아래서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길을 걷다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살짝 끝이 바래진 초록빛 풀을 손으로 한 번 훑고 이름 모를 붉은 꽃에도 괜스레 눈길을 준다.



너는 이름이 뭐니- 대부분은 돌아오는 대답은 없지만 그렇게 세상을 향해 조금은 따스한 눈빛으로 말을 건네다 보면, 아주 가끔은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는 듯 신이 나 재잘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주황빛 햇살에 의해 더욱 찬란해진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이제 막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슬리퍼 차림의 20대 청년, 유모차를 끌고 가는 단란한 신혼부부, 아주 느린 속도로 지팡이를 짚으며 땅의 주름을 세는 노인,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머니한테 혼나고 있는 어린 소년을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엔 설렘과 온기가 가득하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런 말 없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곧 여기저기서 신이 난듯한 아우성들로 세상은 시끌벅적해진다. 여전히 맑은 세상과 파란 하늘. 아름답게 부서지는 햇살의 파편과 그들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며 좀 더 따뜻해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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