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서빛

아장아장 거리며 겨우 걸음마를 떼던 아기가 어느덧 제 발로 여기저기를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시간이 덧없이 흘렀나 싶다가도 튼튼한 두 다리를 바라보곤 이내 마음이 흐뭇해진다. 유모차 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어느 날부터는 직접 끌어보겠다며 고집부리기 시작했다. 유모차를 끄는 엄마의 행동을 모방하려고 것인지 기꺼이 손잡이를 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이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제 손으로 유모차를 끌고 다녔다.

유모차가 제 키보다 크기 때문에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부딪혔고, 풀이나 나무에 박히거나 벽에 부딪혀 유모차가 움직일 수 없으면 떼잉- 하고 인상을 찡그리며 울었다. 짜증 섞인 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내게 도움을 청하면,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유모차를 다시금 제자리로 옮겨주었다. 문제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할 수 없는 아이가 매끄러운 차도로 유모차를 끌고 다니려는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의 안전과 직결되자 곧바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집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발화가 늦어 아이와 소통이 되지 않은 탓에 유모차 곳곳에 흠집이 났고 번번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일이 반복되자 나는 답답한 심정으로 어린이집 선생님께 이 상황을 털어놨다. 그러자 오히려 선생님은 좋은 현상이라고 말해주셨다. 아이가 주도적으로 뭘 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니,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그로부터 나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아이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 손에 유모차가 익숙해진 탓인지 좌우로 수월하게 조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공동현관문을 어느 한 모퉁이에도 부딪히지 않고 유연하게 통과하고 나서 곧바로 앞에 놓인 계단으로 곤두박질치지 않고 오른편에 자리한 내리막길로 방향을 틀었다. 경사진 내리막길을 향할 때는 뛰어 내려갈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제 팔에 힘을 주어 매우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이 광경을 목격한 나는 아이가 한 차례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무엇이든지 내 통제 하에 두려고 했던 어리석음에 내성했다. 주변에 민폐를 끼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하고, 위험한 차도로 가려는 아이의 편협적인 모습만 보고 무조건적으로 아이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해 버렸다. 그저 나의 할 일은 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기 전에 손으로 막고, 또한 폐를 끼쳤다면 정중하게 사과하면 된다. 천지분간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억지로 꾸짖을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도움을 청하면 가서 도와주고, 그리고 묵묵히 뒤에서 지켜봐 주면 된다.

나는 몇 걸음 아니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따라갔다. 자아가 생겨서 나날이 다양한 욕구를 표출하는 아이를 나는 어떻게 받아주어야 할까. 내 앞에 멀리 보이는 저 길은 다행히도 차도 없이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안전한 길이다. 아직은 키가 작아 유모차밖에 볼 수 없는 아이는 그저 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직진할 뿐이다.

나는 문득 생각에 잠긴다.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길 뿐인데, 과연 내가 언제까지 이 아이의 앞 길을 책임지고 봐 줄 수 있을까. 부모라면 죽을 때까지 아이의 앞길을 대신 내다봐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 그건 아이의 인생이 아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내 손으로부터 떠나 제 길을 찾아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어떤 길을 가든 묵묵히 지켜보고 바라봐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진중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돌부리에 유모차 바퀴가 걸렸다. 아이는 나를 찾지 않고 유심히 돌부리를 바라보다가 손잡이를 잡고 덜컹덜컹하며 유모차의 바퀴를 앞뒤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곤 힘을 주어 손잡이를 뒤로 당겨서 돌부리에서 빠져나왔다. 자랑스러운 듯이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번졌다. 나는 박수를 치며 기쁘게 큰소리로 칭찬을 해주었고 달려가 안아주었다. 잠깐이나마 아이가 조금만 천천히 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의 길이 예상과 달라 힘들 때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재밌었던 날도 많았다. 비혼 독신을 외쳤던 내가 가장 먼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일은 아직까지도 친구들에게 회자되는 이야깃거리이고, 그 와중에 부모님의 결사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와 같은 세기의 결혼을 한 일 또한 잊지 못할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돌아가서 선택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은 하나도 없다. 가슴 아픈 실패를 겪은 일은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지만, 그 또한 내 인생에 큰 거름이 되어주었고 좋은 글감으로 탄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겨우 아이가 유모차를 끄는 일에 이렇게 태산 같은 걱정이 앞선 나는 팔불출의 미숙한 엄마이다. 그건 앞으로 아이와 함께 더 성장해야 할 엄마라는 뜻이기도 하고, 아이뿐만 아니라 내 앞 길도 알 수 없단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닥칠 내일 하루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저 이 순간을 행복해하며 최선을 다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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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