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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Jan 29. 2019

서른여덟, 6개월 만에 결혼하다 #8

세미 상견례

“어디를 가자고?”

순댓국을 먹고 있었다. 가락동에서 유명한 맛집이다. 부추와 들깻가루가 안 들어가서 서운하지만, 국물이 진하고 맛있다. 뜨거운 순대를 한입에 넣고 깍두기까지 욱여넣었을 때였다.


“유럽.”


그가 순대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예전에 그가 여름휴가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길어야 3박 4일을 생각하고 오케이 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그는 해외에 많이 나가보지 않아서 여름휴가를 기대했다. 반면 나는 공항을 자주 들락거렸다. 반은 출장이었고, 반은 여행이었다. 해외는 마음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름 휴가는 큰 의미가 없었다.


“여름은 여행하기에 너무 더워. 9월에 가자.”


휴가를 미뤘다. 여름은 외식업의 성수기다. 방학 기간인 7, 8월은 일 년 중 매출이 가장 높은 달이다. 매출이 높으면 그만큼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많다. 본사 책임자인 나는 한여름에는 서울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화해한 후에 그가 달라졌다. 아침에는 모닝콜을 했고, 자기 전까지 통화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연락했다. 하루는 수제비가 먹고 싶어서, 하루는 양꼬치가 먹고 싶어서 만났다. 일주일에 다섯 번을 만난 적도 있다. 만날수록 더 자주 보고 싶었다. 데이트를 하고 나면 데려다주었다. 약속의 땅에서 키스하다가 헤어지기 싫어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와 함께하는 밤들이 늘어갔다. 그는 베개에 머리가 닿으면 잠드는 사람이고, 나는 깊게 잠들지 못한다. 잠들어 있는 그를 보는 게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그가 자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강렬한 사건은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자주 만나다 보니 그의 소비 패턴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는 데이트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강남에서 양갈비를 먹고 압구정에 가서 맥주를 마신다. 2차까지 가면 데이트 비용이 꽤 나왔다. 그를 만나면서 지출이 늘었다. 지난 세 달간 거의 저축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유럽 여행이다. 유럽이면 1박 2일 여행과는 단위가 다르다. 그의 월급이 궁금해진다. 나보다 많이 버는 걸까? 아니면 나보다 적게 버는데 모을 생각이 없는 걸까? 그는 결혼 시기를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여행을 가서 싸우지 않고 온다면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볼 참이다.


*****

10박 11일간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여행하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은 한 달 살기를 하고 싶어서 자료를 수집해둔 도시고, 프랑스 남부는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지역이다. 유럽 여행이라는 목표가 생기자 매일 논의할 거리가 생겼다. 그는 감수성은 무디지만, 역할과 업무가 정해지면 묵묵히 수행하는 기능적인 인간이다. 그가 엑셀 파일을 만들어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연결했다. 가고 싶은 곳의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링크를 공유했다.


퇴근 후에는 각자의 집에서 스피커폰 모드로 통화했다. 어떤 날은 2시간 동안 휴대폰을 켜 놓은 채 생활했다. 반은 여행 준비였고, 반은 일상적인 대화였다. 한쪽이 일이 있어서 통화를 짧게 하는 날이면 허전했다. 내 하루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었다.


선을 본 후 엄마가 그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얼버무렸다. 사귄다고 하면 결혼 얘기를 꺼낼 게 뻔했다. 29살까지 나는 엄마에게 자랑거리였다. 사교육 없이 좋은 대학을 갔고, 장학금을 받았고, 외국계 회사에 다녔다. 하지만 서른이 넘자 엄마는 초조해했다. 아줌마들을 만나고 오거나 결혼식장을 다녀온 날이면 더욱 예민해졌다. 어느샌가 나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올해 나는 38살이었고, 엄마는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까 봐 불안해했다.


그와의 여행이나 외박 등은 기껏해야 1박 2일이라 적당히 둘러댔다. 하지만 열흘이 넘는 유럽 여행은 숨길 수가 없다. 비행기 표를 끊기 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와 사귀고 있고, 여름휴가를 같이 가기로 했다고 하자 엄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떠나기 전에 인사시켜 달라고 했다.


연애를 공개한 날부터 엄마는 주선자인 순희 고모와 매일 통화했다. 순희 고모는 예비 시어머니와 엄마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했다. 어머니 두 분이 우리를 보고 싶어 하셨다. 두 어머니를 만나게 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말복에 삼계탕이나 먹자.”


엄마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여행 3주 전이었다. 메뉴와 시기 모두 적당하다. 예비 시어머니가 대전에서 올라오셨다. 순희 고모도 함께 보기로 했다. 긴장은 했지만, 어려운 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행 가기 전에 안심시켜드리는 자리 정도로만 생각했다. 우리는 잠실새내역의 한 영양센터에서 만났다. 처음 본 그의 어머니는 작고 마른 체구였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낯설지가 않았다. 그와 똑같이 생겼다는 걸 곧 깨달았다. 체형도 판박이였다. 그의 가느다란 다리는 예비 시어머니를 닮은 것이었다.


예비 시어머니는 그와 달리 말수가 많으셨다. 초면인데도 어색하지 않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엄마도, 순희 고모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했다. 긴장을 하자 말수가 줄었다. 말없이 삼계탕의 발골에 집중했다. 그는 잘 먹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나름의 매력 발산이다. 덕분에 나는 그의 몫까지 두 배로 말을 해야 했다.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부터 예비 시어머니가 나를 유심히 보셨다. 너무 빤히 보셔서 모른 척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호기심 가득한 여고생의 눈빛이다. 아들의 여자 친구를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나를 보신다.

그는 어머니에게 존댓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대전에는 명절과 부모님 생신 때만 내려간다고 했다. 지금까지 엄마와 투덕거리며 한집에서 산 나와는 관계의 결이 달랐다.


“아들, 너희 집에서 자고 가도 되니?”

“누나네 가서 주무세요.”


어머니가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는 어머니에게조차 집을 공유하는 데 인색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어머니.”


택시 정류장 앞에서 예비 시어머니와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그가 뒤에서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손짓을 했다.


- 우리 엄마는 너 마음에 든대.

- 우리 엄마도 합격이래.


집에 돌아온 후 양가 어머니의 반응에 대해 서로 알려주었다. 다행히 어머니들이 우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만하면 세미 상견례는 성공적이다. 이제 유럽으로 떠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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