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Dec 15. 2020

결혼식 사회 5분 전 도착

-미숙한 어른들

우리가 3시간 30분 전에 출발하기로 한 건, 나름대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잠실에서 구미에 있는 웨딩홀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이었다. 계산대로라면 도착하고 나서도 한 시간이나 여유가 있었다. 미리 도착해서 인사도 여유 있게 나누고, 연습도 몇 번이나 더 해봐야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결혼식 사회를 보기로 되어있었다.


*   


신랑은 7년 전 롯데월드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형이었다. 여름에 대뜸 전화가 와서는 결혼한다고 하기에 축하한다고 깔깔깔 웃었는데, “사회는 너야.” 라고 말하는 바람에 웃음기가 1초 만에 사라졌다. “사회를 좀 봐줄 수 있겠니?”도 아니고 “사회를 부탁한다.”도 아니었다. “사회는 너야.” 이 얼마나 황당하고 당찬 부탁인지. 너무 뻔뻔하고 당당해서 나는 별 생각도 없이 “그래요.”하고 대답해버렸다.      


결혼식을 한 달 쯤 앞두고 형수님을 만났다. 둘이 청첩장 준다고 서울로 올라왔다. 점심시간 즈음 회사로 찾아와서 잠깐 같이 걸으며 얘기를 했다.

“오빠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네네,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어색한 대화가 이어졌다.     

“오빠한테 결혼식 사회는 누가 보냐고 물어봤는데, ‘자기야 걱정하지 마, 서댐이라고 진짜 웃긴 애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웃긴 애?그냥 우스운 애가 아니었을까.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같이 알바하던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는데 재밌는 시간들이었지만, 난 그렇게 웃긴 편도 아니었다. 그 형은 나를 언제부터 ‘진짜 웃긴 애’로 생각했던 걸까. 혼란스러웠다.

“제가요?”

“근데 자기야. 내 생각보단 텐션이 낮은데?”

난 내 입으로 웃기다고도 안했는데 벌써 실망을 줘버렸고. 아무튼 결혼식 사회에 대한 부담감은 그날 이후로 더 커져만 갔다.     


*


3시간 30분 전에 출발하기로 한 건, 결과적으로는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우리가 경로를 찍어본 시간은 느긋한 밤 시간이었고, 토요일 오전의 도로사정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동생은 얼굴이 바짝 굳었고, 예상 도착시간은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예식 시작은 오후 1시. 이미 아슬아슬했다.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했을 때는 예상 도착시간이 12시 50분 까지 늘어났다. 온갖 새치기와 얌체운전을 동원했음에도, 여주를 지나고 있을 때는 1시 5분을 넘겨버렸다. 지각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 사고를 감수하고 밟아야겠다.” 남자 셋을 태운 빨간색 스팅어는 여주를 지나 도로가 뚫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야말로 질주했다.      


예상 도착시간은 1분 줄이기도 어찌나 힘이 드는지,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설상가상 물도 안 사왔는데(휴게소에 들를 생각이었다.) 잠깐 멈춰서 물 한 통 살 시간도 없었다. 시간이 초 단위로 아쉬워서 냅다 밟았다. 눈물겨운 스퍼트 끝에 시간을 1분씩 줄일수 있었다. 세시간 넘게 물을 먹지 못해서 목은 바짝 말랐고, 화장실도 가고 싶었다. 대본을 외워도 머리 바깥으로 자꾸만 튕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한 편으로는 실수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고화질로 상영되고 있었다.      


어찌저찌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8분 정도가 남았다. 사실 그 마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리허설이고 뭐고 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급히 옷매무새를 다듬고 형을 찾았을 때, 시간은 거의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형 저 왔어요!”

“야 왜 이렇게 늦었어-! 빨리 들어가 봐.”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단상위로 뛰어올라서 머리를 깔끔하게 당겨 묶은 스탭에게 사회자라고 소개했다. 스탭은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침착해보였다. 무심한 표정으로 내게 마이크를 건네 주었다.


마이크에 대고 '아-아-' 테스트를 했다.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사람들은 이미 거의 들어와서 자리에 앉고있었다. 안내방송을 할 타이밍은 이미 지나버렸다.


“언제 시작하죠?”


결혼식 사회도 처음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결혼식 자체도 거의 와본 적이 없어서 온통 낯설 뿐이었다. 유튜브로 결혼식 사회 동영상을 수 십 번, 수 백 번 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험이 없으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지금 하시면 돼요.”

“네?”

“지금 하세요. 지금요.”


마이크 테스트 아-아- 하고 나서 바로 첫 결혼식 사회를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어떻게든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울상으로 입을 뗐다.   


“지금부터- 신랑 ○○○군과, 신부 ◇◇◇양의 성스러운 예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결혼식을 일주일 남기고, 사실 나의 모든 신경은 결혼식 사회로 향했다. 집에서는 멍하니 앉아서 대본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방에서 중얼거리고, 녹음하고, 듣고, 일어서서 내뱉었다. 그게 모두 몸으로 남았는지. 실제로는 생각보다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아주 노련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다.


마이크로 딱 티 나지 않을 만큼 벌벌 떨었는데, 신기했다. 나는 살면서 결혼식 사회는 그냥 누군가가 당연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축가도 당연하게 누가 나와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를 보려고 서있으니까, 떠는 사람들이 다 보였다. 신랑 신부는 물론이고, 양가 부모들, 축가 부르는 지인들, 부케 받는 사람도 떨었다. 어릴 때는 미처 몰랐던 어른의 미숙함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어릴 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루한 행사가 아니었다. 여유롭고 능숙한 어른들의 축제가 아니었다. 어른이고 자시고 인생은 결국 미숙한 사람들과의 허둥지둥일까. 갑자기 사람들이 다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다같이 벌벌 떠는 모습이 어떤 면에서는 나에게 위로이자 안도였던 것 같다.     


긴장이 완전히 풀려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눈이 풀려 노곤했다. “형 이제 천천히 못 달리겠어요.” 운전하는 동생이 웃으며 말했고, “우리 오늘 영화 한 편 찍었네.” 나는 농담하면서 웃었다.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차창 저 너머로 울긋불긋한 노을이 참 예뻤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파굽기의 어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