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 이야기>
“난 매일 눈 뜰 때마다 당신이 죽길 바래!
당신이 병에 걸려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고!”
무슨 대단한 철학을 가지고 비혼을 결심한 적은 없다. 어떤 조건을 만족한다면 나는 큰 고민 없이 결혼을 택할 것 같다. 필생의 사랑을 만났는데 마침 나에게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가 있다든가 하는...
사실 결혼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불행하기 싫다. 여러 삶을 끌어 안느라 허덕이기 싫다. 누군가에게 나라는 고통을 떠넘기기도 싫고, 예상하지 못한 고통을 감당하기도 싫다.
부모님은 늘 불화했다. 나는 사춘기도 겪지 않고 자랐다. 중고등학교를 통과하면서 반항이란 걸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집안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싸움이 언제나 '마지막'이 될 것처럼 거창하고 요란했기에, 나의 사춘기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울분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미 험악한 분위기에 갈등을 더하기는 싫었다. 애써 외면하면서 그 시기를 통과했다.
90년대 초반에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IMF를 겪고, 부모님의 다툼을 쉬지 않고 목격하며 자란 아이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공감할 텐데. 결혼을 생각하면 행복에 대한 기대보다, 불행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행복할 거라는 확신은 별로 없고, 쉽게 불행해질 것 같다는 예측은 실감 난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제목과 다르게 이혼하는 이야기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모종의 이유로 이혼을 결심한다. 점진적으로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갈등은 극단으로 향한다. 어른스럽게 이별하려 했던 그들이 그야말로 바닥을 내보이는 싸움을 할 때, 찰리가 소리친다.
“난 매일 눈 뜰 때마다 당신이 죽길 바래! 헨리(아들)가 괜찮다는 보장만 있으면! 당신이 병에 걸려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고!”
병에 걸려 죽을 거라면 차에 치일 필요가 없고, 차에 치여 죽을 거라면 병에 걸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찰리는 그렇게 말한다. ‘병에 걸려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고. 이보다 절절하고 현실적인 증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더 이상 논리의 영역에서 머무르지 않고 퍼붓는 순수한 분노의 표현. 이 잔인한 감정이 사랑이라는 알을 깨고 흘러내렸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랄 결혼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결혼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다. 유부남의 삶도, 자유연애의 삶도, 독신의 삶도 나에게는 모두 매력적인 선택지인데 세상은 숙고할 틈도 주지 않고 채근한다. 결혼 적령기에 도달했으니 빨리 결정을 하라고, 때를 놓치면 인생이 망할 것처럼 겁을 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득하다. 행선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버스가 클락션을 빵빵 울려대는 것 같다. 안 탈 거냐고. 안 탈 거냐고. 이제 곧 출발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