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멋진 하루>
네가 이쪽 얼굴 좋아했잖아.
난 네가 이쪽 좋아해가지구,
늘 네 왼쪽에 서 있었는데.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에게 우리는 선물을 한다. 봉투에 돈을 담아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념일마다 봉투를 교환하는 커플을 생각하면 조금 어색하다.
왜 선물은 돈으로 주면 안 될까? 돈에는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물 그 자체에 감동한다기보다는, 그 선물이 나에게 도달한 경위에 감동한다. 상대방이 나를 위해 이 선물을 고른 이유와 시간들. 뭉클하게 다가오는 것은 선물에 담긴 과정이다.
‘여자들은 작은 것에 감동한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다. 내 여자친구는 비싼 걸 좋아하던데? 말만 그렇게 하면서 명품 달라는 소리 아니야?
그러나 나는 작은 것에 감동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신뢰한다. 작은 것에 감동하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라고도 생각한다. 작은 것에 감동한다는 건 작은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나를 생각한 과정이 담겨있기를 바란다는 뜻일 거다.
<멋진 하루>는 희수(전도연)가 헤어진 전 남친 병운(하정우)을 찾아가 빌려준 돈 350만 원을 받아내는 이야기다. 빈털터리인 병운은 다른 사람에게 조금씩 빌려서 갚아주기로 하고, 둘은 하루종일 여러 사람을 만나며 돈을 메꾼다.
영화 속에서 병운은 한없이 철없고 가벼운 사람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인생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미워할 수가 없다. 알고 보면 속이 정말 깊은 사람이다. 묵직한 진정성이 있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병운은 괜히 얼굴을 슥 들이민다. 희수는 "왜 이래"하며 짜증을 내는데, 병운이 능청스럽게 말한다. "네가 이쪽 얼굴 좋아했잖아. 난 네가 이쪽 좋아해가지구, 늘 네 왼쪽에 서 있었는데."
영화를 다시 돌려보면 병운은 정말로 희수의 왼쪽에만 서있다. 감동이라는 건 그런 데서 오는 게 아닐까.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상대방은 나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모르는 나를 상대방이 발견해 줄 때. 그 과정이 예측불허일수록, 길수록 감동은 더 커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