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며 큰다고 했던가?
난 운동하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물론 운동으로 치자면 40년 동안 한 종목만을 해 온 아빠도 빼놓을 수 없지만 아빠 운동 종목은 다음 장에서 풀어보기로 한다. 어릴 적 엄마와 단둘이 집 앞 시장을 가거나 엄마 지인들을 만날 일이 있을 때면 "딸이 아빠 닮았나 보네"하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그 말인즉슨 딸이 엄마를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쁜 딸(물론 우리 엄마 시각에서)과 자랑삼아 함께 다니던 엄마는 애써 미소를 잃지 않으며 대답했다. "네..."하고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약간의 섭섭함이 묻어 나오는 엄마의 대답이 나는 내심 싫지 않았다. 아들 둘에 딸 하나, 나는 엄마의 유일한 딸이었다.
엄마는 은근 딸인 내가 자신을 닮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
2.
저녁 7시가 되면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75세가 된 요즘 엄마의 저녁 루틴은 요가다. 2년 가까이 되어간다. 저녁 7시는 엄마의 요가시간이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면 처음엔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 여러 번 전화를 하거나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기도 했지만 이젠 놀라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엄마의 요가 시간을 지켜드려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75세에 요가하는 엄마라니... 우리 엄마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남의 엄마라면 너무나 멋진 엄마시라며 '어머어머~ 대단하시다' 하면서 들었을만한 이야기를 심심하게 넘긴다. 최근 엄마 모습을 보면 요가를 하기 전 엄마와 저녁 요가를 하는 엄마로 나뉜다.
요가 덕분에 살고 있다며 그 시간만큼은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 하는 걸 보면 정말 좋기는 좋은가보다. 그러고 보니 요가의 어떤 점이 좋냐고 한 번도 물어보지를 못했다.
엄마의 요가와 그동안 내가 해오던 요가는 분명 다를 텐데 나는 왜 한 번도 물어봐주질 못했을까?
3.
시노다 세쓰코의 소설 <퍼스트레이디>의 주인공은 30대 후반의 여성이다. 그녀는 당뇨병을 앓고 있는 엄마 대신, 병원을 개업한 아버지의 '퍼스트레이디' 역을 맡아 대외 활동을 하며 병원을 꾸려나간다.
엄마에게 간 이식 이야기를 꺼내자, 엄마는 "네가 해주면 제일 좋지"라고 눈을 반짝거린다. 엄마는 딸 이외에는 그 누구의 간도 이식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는 딸의 몸이 자신의 몸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 거리낌 없이 '네 몸은 내 몸'이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딸은 위화감을 느낀다. 그리고 은근슬쩍 남동생이 간 이식을 하면 어떨지 묻자, 엄마는 격하게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프지도 않은 몸에 칼을 대다니, 큰일이라도 나면 어떡해? 어느 부모가 그런 일을 시키고 싶겠어?"
엄마가 자식 둘 중 한 한 명은 사랑하는 자식, 다른 한 명은 본인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안 그녀는 극심한 혐오와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 읽으며 난 내가 쓴 글인 줄 알았다. 엄마는 여섯 딸 중 첫째였다. 아들 형제 없이 자라서인지 아들, 오빠를 유독 애달퍼했다. 자신의 모습을 보이면 보이는 대로 자신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싸고 편을 들었다. 엄마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오빠는 어릴적부터 친구과 함께 종종 가출을 했다.
앞에서는 편들어 주고 뒤에서 욕하던 큰 아들은 결국 집을 나갔다. 소설 속에선 딸이 집을 나갔는데 우리 집에선 아들이 집을 나갔다.
4.
나의 75세엔 어떤 운동을 하고 있을까?
요즘 엄마에게 요가란 어떤 의미일까? 매일 저녁 엄마만의 요가 시간이 집 나간 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줄여줬으면 좋겠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고 했던가? 75세에 매일 요가하는 엄마의 딸은 이제 50을 향해 간다. 25년 뒤, 나의 75세엔 어떤 운동을 하고 있을까?
어떤 종목이 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이를 잊고 무언가에 빠져 몰입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거...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부모가 자식에서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는 운동 습관이다.
*관련 책 -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