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by 서강


돈이란 건 벌어서 꽉 쥐고 있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 물 흐르듯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나는 '진짜 부자들의 돈 쓰는 법'이라는 책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다. 보통은 돈 버는 법을 알려주는데 돈 쓰는 법이라니. 그 제목이 나를 이끌었고 덕분에 알게 되었다.


4독을 하면서 책에 밑줄을 긋는 게 아니라 마음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돈은 쌓아두는 게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용하느냐의 문제라는, 그런 문장들 앞에서 나는 자꾸만 책을 덮고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생각이 곧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올 줄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임대인과의 첫 만남은 그저 평범한 계약 자리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문이 열리고 사무실 안으로 캐리어 하나가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캐리어 가득 실린 과일 상자들이 먼저 들어왔다고 해야 맞겠다.


계약을 다 끝내고도 그분은 과일을 그대로 두고 일어나셨다. "사모님, 이거 가져가셔야죠." 조심스레 말을 건넸더니 그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요? 여기 드리려고 가져온 거예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캐리어는 챙겨가셔야죠." "아 맞다, 캐리어는 가져가야지." 웃음이 오가던 그 짧은 순간에 내 안에서 무언가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아, 이게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의 얼굴이구나.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손님들이 음료를 들고, 빵을 들고, 마음을 들고 드나든다. 하지만 과일을 '여러 상자나' 들고 온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날 나는 배웠다. 무엇이든 하려거든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쪽으로 해야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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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엔 그냥 과일 상자였지만 그 속에는 나누는 기쁨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분이 사용하는 돈은 이미 행복해진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 나도 저렇게 써야겠구나. 그 생각이 들자 가슴이 방망이질을 해댔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고민하던 사람이 어떻게 하면 돈을 잘 쓸까 고민하게 되는 순간, 돈은 쫓아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존재가 된다는 걸 그날 처음 온몸으로 느꼈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첫 입주라 호실을 보러 오는 중개사와 손님들을 위해 직접 참기름을 짜서 나눠주신다는 말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나도 나름 베풀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앞에서는 명함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을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다니.


주말,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을 기꺼이 대접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돈의 선순환이 돌고 돌아 내 앞에 이런 풍경으로 놓여 있는 것이다.


이 기쁨을 혼자만 품고 있을 수가 없었다. 책을 함께 읽고 이미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했다. "제가 뇌출혈로 입원했을 때 캐리어에 간식 잔뜩 싣고 와주셨잖아요. 그때 정말 감동이었어요."


나는 그제야 기억해 냈다. 그때의 나. 아무 계산도 없이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마음. 아, 내 안에도 그런 기질이 있었지.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잘하고 계신데,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시는 건 아닐까요?"


그 말 앞에서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 단톡방에도 올렸다. 돈의 선순환이라고. 친구들은 "좋겠다", "대박이다"로 한 마디씩 남겼다. 필사방에도 올렸다. "좋은 말과 마음이 나가서 좋은 친구들을 데리고 왔네요", "나눔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네요." 다양한 말들이 오간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했던가.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니 다른 언어가 쏟아져 나온다. 그 언어 하나하나가 그 사람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이렇게 또 한 번 드러났다. 내 앞에 천사를 보내듯 사람을 보내셨구나. 이제야 알겠다. 돈을 써야 할 정확한 이유가 생기면 써야 할 돈은 저절로 들어온다는 이치.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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