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입니다,라는 말
가끔, 한 장의 사진이 과거의 문을 연다.
서울 대공원. 그 시절,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놀이공원에 간다는 건 웬만한 마음으로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옆에는 첩에게서 난 아들이 서 있다.
좋게 생각하면,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없는 게 다행이다. 나는 직접 겪은 게 없다. 어릴 적 기억이라곤 없고, 그저 엄마와 오빠에게서 전해 들은 말들이 전부다. 하지만 오빠는 다르다.
나보다 다섯 살 많았던 그는, 누구보다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다. 초등학생 시절, 오빠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경남 진주에 있는 아버지 식당을 찾아갔다. 아들이 찾아온 걸 반가워했을까. 아니었다. 그날, 식당 손님 중 누군가 말했다.
“아들 인물 좋네요.”
그 말에 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제 조카예요.”
그렇다. 아버지에게 오빠는 조카였다. 조카이기에 돌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단 두 음절이 오빠의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다. 그 대못은 자라며 녹슬었고, 녹슨 채로 뽑히지도 않은 채 평생 오빠를 괴롭혔다.
나는 그 이야기를 성인이 되어서야 들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눈물로도 꺼낼 수 없는 기억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더 궁금했다. 그런 아버지의 제사를 엄마는 지극정성 지냈다. 그 제사를 이제는 오빠가 지내고 있다.
배신당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지만, 피는 또 다른 모양으로 흐르는 것일까. 오빠는 묵묵히 제사상을 차리고, 그 위에 밥과 국과, 오래전 가슴에 박힌 기억을 올린다.
혈육이라는 말이, 참 잔인하면서도 끈질기다. 끊고 싶은 마음과 이어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