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어요

by 서강



창문으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늘이 회색 담요를 덮은 듯한 오후, 나는 책장을 넘기다 멈춘다. 문득 시선이 거실 액자로 향한다. 엄마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움은 불현듯 밀려온다. 에고도 없이,

그 순간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다. "태풍 온다는데 밖에 나가지 마라."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던 그 음성은 언제나 같은 멜로디였다. 비 소식만 들리면 어김없이 울리던 전화벨. 나는 그때 몰랐다. 그 당연함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실에서 청소를 하던 손이 멈춘다. 빗줄기가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마치 누군가의 눈물처럼.


이제는 태풍이 와도 걱정해 주는 목소리가 없다. 당부할 사람도, 안부를 묻는 전화도 없다. 그저 빈 공간만 남았다. 휴대폰 화면을 켜고 통화 기록을 내려다본다. 엄마라는 이름은 더 이상 뜨지 않는다.


비는 계속 내린다.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나는 책을 덮고 한참을 엄마를 응시한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태풍이 올 때마다 걱정하는 마음, 안전하기를 바라는 간절함, 그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시간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본 막내가 말한다.

"우아하게 독서를 하시네요."

먼 훗날 막내도 비 오는 날이면 클래식 음악 들으며 독서하는 엄마를 떠올릴까.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뜬다고 했다. 하지만 때로는 비 자체가 무지개인 것 같다. 그리움의 색깔로 물든 오늘 같은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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