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가을의 문턱에서

by 서강

여름의 끝, 가을의 문턱에서


서강(書江)


삶은 기다림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결단이다


계절은 떠나며 선물하고

다가오며 또 선물한다


낮에는 여전히 햇볕이 뜨겁지만

저녁길에는 바람이 달라졌다

오래된 여름의 장막이 걷히듯

계절은 불현듯 우리 곁에 온다


부엌 창문을 열다 보면

기억이 불쑥 고개를 든다

좁은 부엌에서 삶을 버텨내던 엄마의 모습

사소한 풍경 하나에도 인생의 무게가 숨어 있음을


햇살과 바람이 교차하는 순간

몸은 계절의 변화를 먼저 알아챈다


릴케는 말했다

“가을은 우리를 천천히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책 한 줄이 오늘의 하늘을 새롭게 비춘다


여름의 끝에 서 있는 지금

비로소 내 안의 쉼표를 발견한다


계절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뜨거운 물결이 사라지기도 전에

서늘한 바람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좋은 순간이 온다


낮의 열기와

저녁의 서늘함이 포개진 자리


그곳에 오늘 하루를

고요히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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