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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이라는 선물

by 서강


가을바람이 깨운 것

오랜만에 발을 내디뎠다.

무기력증이 발목을 잡았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선선한 가을바람과 따스한 햇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익숙했던 산책길이 낯설게 느껴진다.

얼마나 오래 집 안에만 있었던 걸까.


무릎이 가르친 것

갑자기 무릎이 아프다.

찌릿한 통증이 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순간 멈춘다.


아, 이거구나.

자고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는 것.

내 발로 걸으며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

모든 게 기적이었구나.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무릎은 여전히 아프지만, 이제 그 아픔마저 고맙다.

아프다는 건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가을 햇살이 어깨를 감싼다.

바람이 볼을 스친다.

이 모든 감각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무릎 하나가 나에게 삶을 가르쳤다.

평범함이라는 기적을.


똘이가 토한 밤

어제 똘이가 토했다.

밥도 먹지 않고, 평소와 다른 모습에 막내가 알바를 포기하고 똘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직장에 나간 가족들은 걱정하며 계속 연락했고, 가족 단톡방이 하루 종일 분주했다.

진료실에서 기다리는 막내의 마음이 얼마나 애탔을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똘이가 꼬리를 흔들며 밥을 먹는 모습.

그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욕심을 내려놓다

더 많이 가지려 했다.

더 높이 올라가려 했다.

더 빨리 성공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건강하게 잠에서 깨어나는 것.

사랑하는 가족이 무사한 것.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것.


욕심이라는 짐을 내려놓는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걷는다.


평범한 하루의 무게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오늘.

가족과 저녁 식사를 나눌 수 있는 오늘.

침대에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는 오늘.


가끔은 목 넘김이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숨 쉬는 것조차 당연함이 아니란 걸 느낀다.

삼키고, 마시고, 숨 쉬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


아픈 것보다 더 아픈 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선물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발걸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릎은 여전히 아프지만 마음은 가볍다.

무기력증도 하나의 과정이었구나.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작은 통증 하나가 삶을 다시 살게 해 주었다.


내일도 걸을 것이다.

아플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건강한 아침은 기적이고,

평범한 하루는 선물이다.

무릎이 아픈 것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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