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선택한 것은 이직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조직 이동 신청도 해보았다. 그쪽의 임원과 면접 같은 면담도 하며 최종 합격까지 얘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속해 있는 조직의 인사 담당자의 고과가 중요한 해라는 이유로 반려당하고 말았다. 내 인생은 누군가의 승진보다 우선순위가 낮았다. 밖에서 보았을 땐 희극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비극이더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책임을 떠넘기고 서로를 헐뜯고 머리에서 계산기 돌리는 소리가 뻔히 들리는 어른들의 모습은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이었다.
새 출발을 하고자 했다. IT서비스 기업과 스타트업, 외국계 기업까지 다양하게 이력서를 제출했다. 1년도 다 채우지 못한 1년차에게는 중고 신입의 자리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명함이 밖에서는 부적응자의 낙인처럼 찍혀있었다. 승전보를 울리던 첫 취준생 때와는 무언가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서류 탈락 메일만이 그런 나를 비웃듯이 메일함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장 가고 싶었던 곳에서 연락이 와 면접을 보게 되었다. 직무와 관련된 질문은 학생 때 열심히 준비했던 내용으로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이직 사유에 대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왜 이직을 하려고 하냐는 것이 화두였다. 미리 준비한 대로 현재 회사를 최대한 비난하지 않고, 가고자 하는 회사의 장점을 언급하며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금 회사를 욕한다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 덕분이었다. 그 덕분인지 1차, 2차 면접을 통과하여 최종합격에 이르게 되었다.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막상 중고 신입의 위치로 가려고 보니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아쉽게 느껴졌다. 계약 연봉은 물론 성과급, 복지, 회사의 위치까지 모든 것이 다운그레이드였던 것이다. 믿고 갈 수 있는 것은 성장 가능성, 그 하나뿐이었다. 만류의 손길이 많았다.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조금만 참고 견디다 보면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장담하며 도전하고자 하는 불씨에 조금씩 물을 뿌리고 있었다.
다행히 원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었다. 또 후회하더라도 하고 나서 후회하자는 가치관이 한몫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장 손에 쥐고 있는 것 때문에 경직된 채 굳어있다면, 더 좋은 것이 왔을 때 굳어진 손을 더 이상 펼 수 없는 것이었다. 또 이미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고 있는 그 모래와 같은 것들이 인생에서 큰 의미를 차지할 수 없다고 믿던 찰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른다. 손에 꼽히는 대기업에 입사하였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얼마 머무르지도 않은 채 훌렁 떠나버리는 모습에 철부지 어린애라고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온갖 실패담과 부정적인 단어들로 화려한 색들로 그려진 내 꿈에 먹물을 뿌리고 갈기갈기 찢어 짓밟아야만 성이 찼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아름다운 그림이 있었기에. 다른 누군가가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보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 들지 못한 붓을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로 다짐했다. 새 출발을 해보고자 했다. 원하는 것을 해보고자 했다. 지금 당장 가진 게 없어도, 아니, 오히려 가진 게 객기밖에 없기에 가능한 사회 초년생의 이상 행동이었다. 그렇게 퇴사 면담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가지를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동기에게 쪽지가 왔다. 앞서 했던 다짐들을 뒤바꿀만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