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좁아서 답답한 회의실의 공기가 한 층 더 무거워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침묵이 이어진다. 긴 침묵 끝에 팀장님은 한숨을 쉬며 끼고 있던 알이 작은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올려 둔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팀장이 되셨다는데, 그 짧은 사이 주름이 더 늘어난 듯하다.
"나가면 후회할 거야.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야."
같은 회사에 20년 동안 있었던, 회사는 두 곳에서 밖에 근무해보지 않은 팀장님의 말씀이 한숨과 서로 앞 다투어 튀어나왔다. IT 회사나 스타트업에 가면 무엇이 달라질 것 같으냐, 회사는 다 똑같다, 네가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들이 이어졌다.
"제가 밖에서 바라보고 기대했던 이 회사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어요."
그렇다. 퇴사 면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회사의 평판은 좋은 수준을 넘어 모든 직장인의 꿈의 회사, 신의 직장으로 불리고 있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회사, 최종 정착지, 워라밸 끝판왕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들이 회사 간판 옆에 붙어 있었다. 자체적으로 딱히 홍보를 하지 않아도 어떻게 입소문을 탔는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그런 곳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생 때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가장 가고 싶은 곳이었다. 항상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을 앞세워 광고를 하고 스마트하고, 기술을 선도하는 듯한 이미지가 있었다. 저곳에서 근무를 한다면 성공의 추월차선에 올라타는 것만 같을 것이다.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뒤로하고 잘 먹고 잘 살아보자. 남들보다 훨씬 더. 이런 생각으로 함께 합격 소식을 알려 온 다른 기업들에 거절의 의사를 표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던 첫날이 스쳐 지나갔다.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야.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래."
아니, 그곳에 내가 적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히려 떠나야 된다는 마음이 생겼다. 안락해 보이는 이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있다가는 스스로 일어설 힘을 다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 둘 책임져야 될 사람들이 늘어나, 더 이상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책임도 없고, 열정과 용기만 가지고 있는 지금 떠나자. <노르웨이의 숲>의 숲 속 깊은 병원, 그곳에 자리 잡고 7년 동안 떠나지 못하는 레이코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실 미안할 것도 아니었다. 회사는, 팀장님은 내 인생을 절대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입생 때 1학년 학점은 망쳐도 괜찮다고, 술을 한가득 따라주며 한 껏 어른스러운 말투를 짓던 선배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이었고, 그것을 바꿔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자신의 굳은 신념을 말할 때면 우리는 죄송하다는 사과를 건넨다. 당신은 나를 막을 수 없으니, 그만 내 길을 막고 비켜주세요, 라는 의미의 인사일 수도.
그제서야 면담은 끝이 난다. 사과의 말씀을 먼저 드렸다면 조금 더 일찍 끝날 수 있었을까. 며칠 밤날을 새며 고민을 해온 나에게 몇 마디의 설득은 혼자 떠났던 기차 여행의 창 밖 풍경처럼, 나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드디어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무거운 공기가 자신도 답답했던지 잔뜩 빠져나갔다. 짐을 챙기고 목에 걸려있던 사원증을 출입 게이트에 댄다. 오늘 만큼은 회전문이 아닌, 옆에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 큰 출입문으로 향한다. 내 두 손으로 잔뜩 힘을 주어 무거운 문을 밀고 나간다. 하루 종일 참았던 숨을 몰아 쉰다. 겨울이 다가와 차가워지는 공기를 잔뜩 코로 들이쉬어 폐를 팽창시킨다. 코 끝이 조금 시리고 목이 칼칼하다. 회사 밖의 나는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제서야 생기가 돌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