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고생이다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첫 직장을 1년 만에 퇴사하였습니다. 전통적인 대기업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였어요. 조직의 분위기도 좋고 회사의 문화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은 재밌었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정말 많았지요. 하지만 저는 얼른 대기업에 다니는 동기들을 뛰어넘어야겠다는 조급함이 있었습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남들에게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 때의 저는 조금 불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느껴지던 시선은 첫 직장에 적응하지 못한 철 없는 신입사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바로 다음 목표를 설정했어요. 그 것은 바로 IT 업계에서 로망이라고 불리는 해외 취업이었죠. 글로벌 테크 기업인 구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와 같이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조건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벌고, 더 멀리 떠나야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잘 가지 못 하는 그 길을 제가 걸어야만 한다고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 때의 제 목표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이직으로 인해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정신이 없었지만, 퇴근 후에는 해외 취업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어요. 영어공부를 하고 가고자 하는 회사의 면접 준비를 했어요. 학생 때보다 더 열심히 문제를 풀고, 글로벌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공부했어요.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해외에 있는 유명한 기업들에 지원했어요. 처음에는 탈락 메일만 받았지만, 점차 준비를 해나갈 수록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어요. 그러던 중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커머스 기업에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어요. 준비한 지 1년 만에 얻은 기적 같은 결과였죠.
꿈을 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엔지니어로서 누구나 꿈 꾸는 미국의 거대한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스스로가 정말 대견했어요. 이전에 했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결국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한 것만 같았어요. 그 동안 고생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그 때의 감격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어요. 내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고, 그 것은 자만심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를 얼른 떠나고 싶었고, 스스로를 좀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하는 물고기처럼 생각하게 됐어요.
가능한 빠른 입사 날짜를 정했어요. 비자와 여러 법 적인 절차 때문에 최소 5개월이 지난 날짜가 가장 빠른 것이었죠. 날짜를 정한 후 준비 과정 또한 빠르게 진행됐어요. 해외 운전면허증을 준비하고, 비자 발급 신청을 했죠. 집을 알아보고, 가지고 있던 짐을 정리했어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작별 인사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눈물을 흘리며 서로 비행기를 타고 오고가며 자주 볼 수 있기를 약속했어요.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두고 떠나는 기분이었죠. 정말 아무 것도 없이 빈 두 손만 가지고 말이죠.
네 달, 세 달, 두 달.. 점점 더 떠나야 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제 마음은 예전처럼 기쁘지 않았어요. 이별이 가까워질 수록 내가 지금 가지고 있던 것들, 누리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 동안 불평이 참 많았지만, 사실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제서야 내가 정말 떠나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해보게 되었어요. 가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무엇을 위해 떠나는 것이지를 말이죠.
많은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해보니 해외로 가서 일하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커리어와 명예, 조금 더 많은 돈이었어요. 반면 잃게 되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보낼 수 있는 젊은 날의 추억들이었죠. 해외에 가서 퇴근 후에 쓸쓸하게 텅 빈 집에 돌아와 혼자 보내게 될 시간을 상상하니, 가슴이 벌써 답답해지기도 했어요. 그 때부터는 떠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주위에서 계속해서 찾기 시작했어요.
이유를 찾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일상의 모든 것들이 그 이유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죠. 출근길에 만나게 되는 동료들의 반가운 인사, 한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며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회의들, 내 입맛에 맞는 맛있는 음식들, 퇴근 후에 강아지와 하는 여유로운 산책, 가끔 만나는 친구들과의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즐거운 주말,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가족들까지. 나는 참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었구나, 이 모든 것을 두고 간다면 그 때의 나는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그 곳에 가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생활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까지 제 인생의 우선순위에 커리어와 명예가 있었다는 것을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것은 다른 것들보다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고 옆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혼자 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아닌 옆 사람들과 여유롭게 풍경을 바라보며 산을 올라가는 것 처럼 말이죠.
결국 해외 기업에는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어요. 이 결정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동안 고민하고 마음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이 것을 기점으로 제 인생은 크게 달라졌어요.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게 되었죠. 이 전과 마찬가지로 한 번도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음에 크게 감사하고 있어요.
만약 현재 자신의 인생이 너무 힘들다면, 어떤 목표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면, 주위를 한 번 둘러보세요.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 살아가며 마주치는 수 많은 사람들, 매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까지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주세요. 인생은 이미 이 상태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참 감사한 날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이 글도 하나의 고마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