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그 해 여름, 인턴 사원으로 입사했다. 주어진 기간은 약 3개월.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뭣도 모르고 시작하게 된 첫 사회 생활은 생각보다 더 잔인했다. 숨소리 하나까지 감시당하는 듯한 숨 막히는 공기와 웃으면서 넌지시 던지는 날카로운 말들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찔렸다.
첫 2주는 즐거웠다. 입사 동기들과 함께 사내 문화에 대해서, 직무에 대해서 교육을 받는 시간이었다. 여러 사옥을 돌아다니며 현장 체험을 해보기도 했다. 가끔 교육 후에 열린 회식 자리에서는 직장에 대한 자부심과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다들 행복해보였고, 이 곳에 들어오게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 듯이 보였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교육 기간이 종료된 후, 각자의 팀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또래 30명 정도와 함께 다니다가 삭막한 사무실로 내던지니 사뭇 외로웠다. 회사의 연령층은 다소 높은 편이었다. 평균이 40대 후반, 인턴을 담당하게 된 막내인 멘토가 40세이셨으니 말이다. 식사를 할 때 마흔이 되신 분이 수저와 컵, 물 등을 세팅하는 광경은 계속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 물론 내가 세팅을 하기도 했다. 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러한 행동을 최대한 하지 못하도록 배려 받았고, 그 따뜻한 듯 차가운 배려는 오히려 가만히 있는 내 두 손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처음 느낀 사회 생활의 매서움은 소위 '신고식'이라고 불리는 행위였다. 나중에 알게 된 얘기이지만, 인턴이나 신입 사원이 오면 해당 사옥에 있는 많은 팀을 모아 발표를 시킨다. 이 때, 갓 학부를 졸업한 입장에서 대답하지 못 할 어려운 질문이나, 날카로운 질문을 굉장히 강한 말투로 쏟아 붓고, 그 때의 반응을 지켜본다는 것이었다. 얼핏 듣기로는 눈물을 흘리는 것을 신고식의 성공으로 보기도 한다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어찌저찌 발표를 마칠 수 있었지만, 수 많은 질문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이 행위의 취지는 어깨에 뽕이 잔뜩 올라간 신입의 기세를 죽여놓기 위함이라고 한다.
팀원들 하나하나가 감독관이 되어 나의 대한 평가를 위로 보고한다. 팀장이 종합 점수를 매겨 정규직의 합불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은 인턴들 모두가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알음알음 선배들로부터, 지인으로부터 들은 정보였다. 따라서 출근길부터 퇴근해 집에 들어오는 순간까지 모든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어떠한 행동도 함부로 할 수 없었고, 메뉴를 주문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눈치가 보였다.
그들의 농담에 입은 웃고 있지만, 속은 웃을 수 없었다. 매우 더운 여름이었다. 최대한 좋게 보이기 위해 비즈니스 캐쥬얼을 계속 입고 다녔지만, 8월 초중반 부터는 그 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반팔에 카라가 달린 폴로 셔츠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입고 간 후에 처음 듣게 된 인삿말은 '이제 편해졌나보네?' 라는 장난 섞인 말이었다. 그 말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 지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그 때의 내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은 인턴들을 하나의 경기처럼 보는 듯 했다. 옆 팀에 배치 된 인턴 동기에게 가 친구가 잘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있던 때였다. 그 팀의 팀원 분께서 내가 어느 팀인지 여쭤 보시더니 이런 넌지시 말을 내뱉었다. "OO씨는 합격할 생각이 없나보네? 경쟁자 거나 도와주고 있고". 우리끼리는 경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까지 뿌리치면서, 남을 누르면서까지는 합격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처음 사원증을 목에 걸며 느꼈던 자부심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첫 사회생활에 대한 기록이다. 더위 때문인지, 그 압박감 때문인지, 받았던 무시와 조롱 때문인지 어느 하나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 때의 몸은 유난히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 떼는 발걸음부터, 침대에 누워 베개에 놓이는 머리까지. 회사란 이런 것인가 고뇌에 빠졌고, 어느 회사나 이런 것이라면 그래도 좋은 곳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래도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다. 팀에서는 방치되어 있는 시간이 있었고, 허수아비처럼 자리를 지키기 바빴다. 시계는 학생 때보다 느리게 돌아갔고, 가슴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런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