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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un 09. 2023

적당히 말하기

한 때 말을 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그만큼 말하는 걸 어려워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으레 짐작하는 그런 멋진 미사여구가 자연스럽게 나와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에너지의 총량이 그리 넉넉지 않은 사람이라 말로 빠져나가는 에너지라도 아끼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듣는 입장에 서있게 되는 날들이 많았다. 오히려 좋았다. 만남 후 헤어질 때 내가 혹여나 말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곱씹어보는 찝찝함은 덜 수 있었기에. 나도 관종인지라 가끔 내 얘기가 하고 싶을 때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당시엔 아쉽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길엔 '말 안 하길 잘했어'라고 생각할 때가 더 많았다.


  제주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가도,  정도가 지나친 사람들을 마주하면 가끔 안타깝기도 하다. 얼마나 외로웠기에 처음 본 나에게도 저렇게 모든 걸 다 털어놓을까. 거창한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위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저 '공감'만을 원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으니까. 스피치 강의를 시작하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 강의 자료를 만들면서 '말은 많이 할수록 독'이라는 걸 배웠다. 정답이야 없겠지만 지금의 나로서 내린 결론이다.


 그러면서 깨달은 부분이 더 있다면, 딱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했을 때 갖게 되는 '말의 힘'을 느꼈다. 말의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가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했다. 한 마디라도 수십 번 머릿속으로 곱씹어보고 나온 말은 묵직하고 울림 있다.


 발언권을 빼앗길까 봐 쉼 없이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조마조마하다. 말도 열매와 같아서 여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여물고 여물어서 탁 내뱉었을 때 비로소 달고 향이 진한 열매가 된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고, 현장의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싶던 어린 시절엔 마냥 말을 많이 하면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딜 가나 청자의 입장에 있기를 자처하고, 오히려 적당히 말한다. (남들이 생각하는 적당히 보다 덜 말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나의 말 한마디는 비교적 잔향이 오래간다. 그리고 나와 내 음성의 잔상도 지속력이 꽤 크다.


 대화가 끝나고 나면 '너무 우리 얘기만 했나... 서하 얘기도 들어야 하는데'라고 말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 오히려 스스로를 칭찬한다. 말의 힘을 알기에 신중하게 고민하는, 마치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랄까. 앞으론 더 적당히 말하고 싶다. 사람인지라 생각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일단 고이고이 잘 접어두어 일기장에 채워 넣는 걸로 만족한다. 시간이 지나 돌이 켜봤을 때 '말 안 하길 잘했어'라도 스스로를 기특하게 생각하는 것도 꽤 짜릿하다.


자기 PR의 시대라지만, 오히려 묵직한 말 한마디로 자기 PR이 더 효과적인 시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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