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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한 Sep 13. 2023

잔소리를 피해 결혼으로 도피하면 안 돼

#1화. 결혼해라해라해라해라  잔소리


출처. pixabay


내 나이 서른

엄마는 내가 스물일곱이 되고 부터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남들 다 있는 남자친구도 없이 집에서 이러고 있냐, 이모 딸은 결혼한다는데 너는 언제 하냐, 크리스마스인데 집에 있냐, 멀쩡하게 생겨서 남들 다하는 연애를 못하냐 등등 엄마의 잔소리로만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매일 새로운 잔소리들을 뿜어대며 결혼에 대한 닦달을 해댔다.


딸이 나 하나라는 이유로 남들 보기에는 소중하디 소중한 고명딸이라 독립도 못하게 하고 부모님이랑 살 면서 온갖 결혼 잔소리를 다 듣고 살았다.

사실 난 결혼이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결혼 생활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남자 잘못 만나서 직사하게 고생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아빠는 여자 잘 만나서 자기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집에 돈 안 갖다 줘도 생활력 강한 엄마를 만나 처자식 먹여살릴 걱정없이 혼자 인생을  즐기며 사는 남자처럼 보였다. 그러니 내가 결혼이 좋아 보였겠나 '아빠 같은 남자 만나면 큰일 나겠구나', ' 남자들 다 비슷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세상 남자들이 우습고 누구와도 같이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고 싶은 남자도 없었고 만나도 썸이나 타다가 사귀자고 할거 같으면 그냥 연락을 씹고 멀리했다. 혼자가 너무 좋았다.



출처. pixabay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토요일에는 무한도전 보면서 마시고 싶은 와인이나 맥주를 먹으며 낄낄거리는 게 너무 행복했다. 요즘 짤로 도는 무한도전을 가끔 찾아보는데 이때 내가 뭘 하고 있었지 하면서 다시 또 낄낄거린다.

하여튼 별거 없는 일주일이었지만 내가 보고 싶은 거 보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행복하게 보냈다. 그런데 주말에 그렇게 낄낄거리고 있는 모습이 울 엄마는 너무 꼴 보기 싫었나 보다

"이모 딸은 남자친구 바뀌었나 보더라 근데 새남친애가 그렇게 똑똑하대 " "무슨 사관학교 다닌다는 거 같던데 집에도 벌써 왔다 갔나 봐"  

계속 그 동생이 남자 만나는 얘기를 전하곤 했다. 아마 그 얘기를 들으면 내가 '어머나 걔는 그렇대? 그렇게 잘난 남자를 만난대? 그럼 나도 연애를 해보겠어!' 이럴 줄 알았나 보다 근데 나는 엄마가 그럴 때마다 

'또 시작이군 걔는 남자에 환장했나 벌써 남자를 바꿨다고? 하긴 남자들이 좋아할 스타일 이긴 하지' 괜히 멀쩡한 친척동생을 비하했다.


생각을 해봐라

나이 서른  하고 싶은 일 하고 있고 돈도 벌고 있고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그러다가 심심하면 같이 심심한 친구 만나서 수다나 떨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데 결혼을 왜 하냔 말이다.

엄마가 잔소리할 때마다 "남이 입은 빨래 하기 싫어 살림하기 싫어"라고 했다.


우리 집은 내 기억에 엄마가 전업주부인 적이 없다 아빠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엄마는 계속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살림하고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서 언제부터인가 나도 같이 살림을 하기 시작했다.

 밥도 알아서 먹고 빨래 청소 등등 엄마가 집에서는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여느 딸들보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결혼해서 남의 자식 팬티를 빨아 주라고? 오.. 마이.. 갓...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정말 혼자 노는 서른 딱 좋았다.




언제 한 번은 제발 이번 소개팅이 마지막이다 한 번만 해보라며 이모가 보장하는 사람이라고 미국에서 왔다고 같이 밥 한 번만 먹어 보란다. 한 번만의 향연이다.

다섯 이모 중에 한 명이 미국에 산다. 엄마는 그 이모가 미국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고 그냥 나도 자기가 직사하게 고생하며 살고 있는 코리아 말고 미쿡에 시집가서 살길 바랐나 보다. 그래 뭐 보장한다니... 한번 만나는 봤다. 근데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이었다 만났는데 인간의 탄생설을 믿냐 진화설을 믿냐 물어본다 그러면서 사이비종교 소식지를 준다. 전도하러 온 건가 그날 체했다. 집에 왔더니 두 번만 더  만나보란다.

진짜 제발 안 만나고 싶다고 울었다.


이모가 미국에서 데려온 남자를 거들떠도 안 보고 첫 만남 대차게 찼다는 이유로 가끔 이모한테 원망의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얘기는 제발 그만해주십사 미국에서 올 때 쓴 비행기 티켓 값을 줬다.

정말 이렇게 까지 해서 남자를 만나고 결혼을 해야 하나. 결혼하기도 남자 만나기도 더더더더더더더더더 싫어졌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간혹

엄마 친구의 친구의 아들의 회사 동료라며

있는 인맥 없는 인맥 다 끌어와서 소개팅을 하라고 했지만 사이비종교 전도사님 생각이 나서 절대 절대 필사적으로 거절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결혼을 하나 둘 하면서 가볍게 해주는 소개팅은 꽤 여러 번 나갔다 결혼을 하기는 싫었지만 어딘가에 운명의 남자는 하나쯤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 운명의 남자까지 거절할 필요는 없으니

도대체 나랑 결혼할 놈은 어디 있는 거야 결혼을 할 수는 있을까? 뭐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 어때 편하고 좋지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했다.

나도 8년이 넘게 연애를 끊고 살면서 맘이 아주 편하지 만은 않았다. 연애 고자가 될까 봐 나도 스스로 걱정은 좀 했다.

근데 주말 무한도전+맥주+낄낄 루틴을 끊고 남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서른이 다 끝나갈 11월 무렵

우리 엄마는 참 대단하다... 몇십 번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또 소개팅을 해보란다...



어? 근데 이상하게 느낌이 이번에는 만나나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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