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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한 Sep 14. 2023

서태지와 배용준 사이 어디쯤인 소개팅남을 만나다

#2화. 일은 재미있으세요?

출처. pixabay


이번에는 엄마가 만나라는 남자가 딱히 정보가 없다.

그런데 정보가 없으니 어디가 좋다 저기가 좋다 이게 잘났다 저게 잘났다 소리를 안 한다.

오히려 더 '만나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하고 싶은 거 다하는 남자를 만나서 평생 가장으로 열심히 사셨다. 나의 서른 11월쯤엔 서울 유명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워낙 수완이 좋아서 집은 경기도였지만 서울 경기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이 많았다. 남편복은 없지만 일복은 터진 것처럼 일을 정말 많이 열심히 하셨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일을 하시다가 손님으로 온 아줌마의 아들을 만나보라는 거다.


어? 굉장히 신선한 만남이다.

내가 차여도 상대방을 차도 전혀 부담 없는 관계인 거다.


소개팅 남의 정보라고는

서태지랑 배용준을 닮았음.

직장인임.


근데... 서태지랑 배용준이 도대체 어디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건지.. '안경을 썼다는 건가? 뭐 그냥 샌님처럼 생긴 스타일인가' 보다 했다.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직장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한 달에 한번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오는 남자

따박따박 생활비를 주는 남편


엄마는 그런 남자랑 살아 본 적이 없었고 나도 그렇게 성실한 남자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그냥 사업만 안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소개로 연락드립니다.
어디서 만나면 좋을까요? 종로 괜찮으세요?


내가 종로에서 일한다고 얘기를 들었나 보다 어딘지도 모르는 강남에서 만나자고 안 하니 다행이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어머나 근데 소파석에 테이블이 한 다섯 개 있는데

한쪽 소파에는 쭉~ 여자, 반대편 의자에는 쭉~ 남자

소개팅 천지였다.


배용준? 아니 서태지? 둘 다 닮은 사람이 없...!


.. 저기.. 배용준 안경을 쓴 양복 입은 서태지 님이 보인다.




이 남자...

"옆의 여자분은 저랑 같은 일을 하는 분인가 봐요."

"저분은 예인 고아라닮은 거 같네요."

"음식은 뜨거울 때 드세요" 


진짜 호감 안 가는 말만 골라서 한다.


나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고 자꾸 옆자리 소개팅녀가 누구를 닮았단다 음식은 뜨거울 때 먹으라고 하면서 덜어 주지도 않고 피클은 자기가 안 먹는지 멀찌감치 있는 거 꺼내주지고 않고 혼자 먹기 바쁘다.


자기 얘기라고는 회사에서 자꾸 체하고 예민해서 약을 자주 먹는다며 회사 서랍에 약이 종류별로 있단다.

나참.... 요즘에는 거절하는 방법, 여자 맘에 안 든다고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생각했다.


한 시간 동안 "아네.. 아.. 그렇구나... 아 그래요" 이 말만 종류별로 되풀이하다가 나왔다.


그냥 혼자 집에 가고 싶은데 데려다준단다. 엄마가 소개해준 거니까 너무 진상은 부리지 말자 싶어 주차장으로 따라갔다.


주차장 가는 길에 경보를 하는지 나는 따라가기 바빴다. 배려도 없고 내가 뒤에 오는지 어쩌는지 알고는 있는지 혼자 와다다다다다다 걸어가기 바쁘다.

소개팅이니까 쭉쭉 빵빵은 아니어도 쭉쭉으로는 보이고 싶어서  내가 가진 제일 높은 10센티 힐을 신었다.


이놈아 좀 같이 가자 응?

네놈 차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요.


발가락들이 앞으로 쏠리면서 느껴지는 고통을   

당장 벗어던지고 맨발로 걷고 싶은 심정을 알턱이 없는 소개팅남에게 괜히 썽이 나서  남의 귀한 자식에게

속으로 이놈 저놈 해봤다.


아 진짜 엄마가 해준 소개팅은 다시는 안 한다고 했는데 내가 왜 또 속아서 이걸 하고 있나 싶었다.


와다다다다다 걸어가는걸

나는 또각또각각각각각각 겨우 따라가서 차에 탔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나한테 그런다.

"서한 씨는 쌍꺼풀이 없죠?"

헐...... 정말 대단한 분이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쌍꺼풀이 있어서 그것도 너무 진해서  

학창 시절, 직장생활 내내 쌍꺼풀이 자연산인지 꼭 인증을 해야 했다.

그 정도로 누가 봐도 진한 쌍꺼풀 눈이다.

근데 이 사람은 나보고 쌍꺼풀이 없단다....

소개팅 내내 자기 얘기만 하고 내 눈 한번 안쳐다 보더니 결국은 내 눈을 무쌍으로 만들어 렸다.


집에 데려다줄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정말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면서 집까지 왔다.

내리면서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5초 만에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간 거 같다.


에잇 엄마가 해주는 소개팅이 그렇지 내가 또 속았다

당시 절찬리 방영 중인 응답하라 1988이나 봐야겠다 하고 있는데 소개팅 남한테 문자가 왔다. 


잘 도착하셨죠? 저도 도착했어요.  
1988이나 보고 자려고요~


 응답하라 1988을 본다고요? 갑자기 급 호감이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웃기다.  응답하라 1988이 얼마나 인기 드라마였나. 

최고 시청률이 무려 18.8퍼센트였다. 내 또래 성인들은 추억을 곱씹으며 꼭 챙겨보던 드라마다. 뭐가 이어 질라고 그랬는지 괜히 나랑 뭐가 통하나 싶기도 하고 만나서  별 얘기도 안 했는데

막상 집에 각자 가서는 응답하라 1988 얘기로 한참 카톡을 했던 거 같다.


엄마가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어땠냐고 묻는다.


아.. 뭐라고 말하지 뭐라고 말해야 엄마가 다시는 소개팅을 물어오지 않을까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혼자 집에서 뒹굴거릴 거냐 등등의 소리는 듣기 싫은데 하...


나쁘지 않았다고만 해도 날짜 잡아라 할 것 같은 빛을 쏘아대며 못 들은 척하는 내 앞에 자세를 고치고 서서  

"어땠냐니깐!" 하며 다시 물었다.

 

"좀 이상해 나보고 쌍꺼풀이 없다고 그러더라?  계속 옆에 여자 얘기만 하던데"라고 했더니


엄마는

"그래도 세 번만 만나봐 사람 한 번 봐서 모른다"

"오늘 잘 만난 거 같다고 상대 엄마한테 얘기한다?" 

"하하 호호 하하 홍홍"


내가 싫어 죽겠다고 안 한 것만으로도 엄마는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난 알았다. 왜 마냥 싫지는 않고 이 사람을 알아보고 싶었는지...





시 내 직업은 스피치 강사였다. 취업면접 스피치를 전문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매일 하는 일이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는 대학생들에게 질문하고 답변 듣고였다. 엉뚱하고 이상하게 답변하면 그렇게는 절대 취업 못한다며 면접관이 좋아할 말들로 다시 고치고는 했다. 

그래서 소개팅을 하면 1차 면접 보듯 항상 묻는 질문이 있었다.


"지금 일하는 거 재미있으세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


-일을 재미로 하나요 그냥 해야 되니까 하는 거죠.
-재미는 없는데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네요.
-힘들죠. 그래서 한 40대쯤 그만두고 레스토랑 차리려고요 저 요리 잘하는데 사진 보실래요?
-일하기 싫어 죽겠어요 나중에 퇴직금으로 치킨집이나 할까 봐요 .


대기업 연구원, 의사, 자영업, 공무원

다양한 직업군을 만나봐도 답변은 저렇게 다 비슷했다.

그런데 서태지와 배용준 사이 어디쯤인 이 남자는

"제가 지금 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요"라는 답변을 했다.

이 답변이 나는 너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남편이 된 이 사람은 그때 당시 답변처럼 아직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지금 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꾸준히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다.


결혼 안 한 싱글 친구, 돌싱이 되고 다시 결혼을 하고 싶은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이 질문을 꼭 해보라고 권한다. 일하는 게 재미있냐고

일이 너무 재미있고 좋다면 금상첨화 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는 건 안다. 그래도 '참고한다, 때려치우고 다른 거 하고 싶다' 이런 대답을 하는 남자는 안된다.

지금 돈을 아주 잘 벌고 있고 대단한 직업이어도 그 직업을 충실히 유지하기 힘들고 매번 바꾸거나 매번 힘들어해서 같이 사는 아내를 힘들게 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만났을 때의 직업에 재력에 홀려서 속지 않길 바란다.


결혼은  혼자 돈 벌고 혼자 시간 보내고 혼자 하고 싶은 거 다할 때보다는 확실히 힘들다.

결혼해서 살림하고 육아하고 친정 시댁 신경 쓰면서 일까지 하려니 진짜 힘들어 죽겠다.

하지만 다시 태어 나도 결혼은 할 거다.


결혼하고 나는 마음이 깊어졌고 한층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다음생애에는 서태지와 배용준 사이 말고

차은우와 뷔 사이 어디쯤인 남자랑? 홍홍홍홍홍

꿈도 야무지다 그런데 뭐... 상상이니까

내 맘대로 몰라 몰라~




다시 2013년

나의 1차 면접에 통과한 남자, 지금 하는 일을 잘하고 싶다는 소개팅남이 다음에는 소고기를 먹자고 한다.

만나자는 식당을 검색해 봤더니 소고기 1인분에 48,000원?(2013년 가격이다) 비싸도 무 비싸잖아,

헛 이 남자 먹는 걸로 꼬시는 건가?


일단 다음 만남에는 소고기를 먹으면서 

2차 심층 면접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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