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 매물은 조용히 움직인다.
진짜 투자자들은 현수막보다 정비사업 정보고시를 먼저 본다.
조합 설립 인가 여부, 철거 예정 시점, 최근 실거래가까지 이미 다 확인한 상태로 연락을 한다. 전화로 묻는 건 간단하다.
"네이버에 올라온 202호, 아직 있나요?"
그녀도 그랬다. 30대 초반의 여성. 말투는 빠르고 요점만 짚었다.
첫 통화부터 매물 상태, 조건, 세입자 현황을 정확히 확인했다.
"집수리 상태는 어느 정도예요?"
"철거 전까지 세입자 바뀔 가능성 있나요?"
"현금청산 대상은 아니죠?"
처음에는 중개사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주식 투자에서는 큰 재미를 못 보고, 지금은 부동산에 집중하고 있는 개인 투자자였다.
매물을 설명하다 보면 자연스레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예산은 어느 정도 생각하세요?"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대출 포함해서 4억까지는 봐요."
그 나이대라면 결혼자금을 준비할 법도 한데, 말투나 태도에서 나는 그 돈이 '결혼'이 아니라 '투자'로 설계된 자금일 거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그녀는 명확한 계산 아래 투자금을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미래'란 상대를 찾아 함께 꾸리는 가정보다, 스스로 설계하고 다져가는 자산에 가까운 개념이었을지도 모른다.
매물 내부를 같이 보러 간 적은 없다.
이 손님은 현장보다 등기부와 도면을 더 오래 들여다본다며 감정가, 분담금, 철거 예상 시점까지 정리해 엑셀로 계산해 두었다고 했다.
"실거주는 아니고요, 철거 전까진 전세 놓고 관리할 생각이에요. 세입자만 안정적이면 손 갈 일도 없으니까요."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계산은 빠르고 분명했다.
가끔 "혹시 비슷한 매물 있으면 먼저 연락 주실 수 있어요?" 정도만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재개발 투자는 ‘부동산 중개’라기보다 ‘투자 정보 제공’에 가깝다고.
특히 재개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현재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사러 온다.
그녀 역시 거주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고, 이 지역이 바뀌어 갈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만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리스크를 줄이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타이밍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때 인연이 되어 그녀와 거래를 이어가게 됐다.
우리가 함께 계약한 재개발 물건은 지금 상승세를 타며 순항 중이다.
내가 십수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결혼 대신 똘똘한 한 채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건, 단지 수익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어쩌면 부럽기도 하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자신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중개보조 일을 하며 다양한 삶을 마주한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설계해 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 역시 배운다.
그들의 선택을 곁에서 지켜보고 돕는 이 일이, 오늘은 유난히 의미 있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