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은 여행지, 나는 전쟁터
"월세 계약 만기 전에 이사 갈 수 있나요?"
손님은 문을 열자마자 이 질문부터 했다.
만기 전에 이사 가야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손님은 휴대폰을 꺼내 녹음파일을 들려줬다.
웃음소리
쿵쾅거리는 음악
외국어로 떠드는 소리까지.
“옆집이 에어비앤비라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려요. 집이 아니라 클럽 같아요.”
“옆집에서 튼 노래가 제 블루투스 스피커로 나온 적도 있어요. 얼마나 소름 돋던지”
그날 이후로 그녀는 퇴근보다 이어폰 충전이 먼저였다고 했다.
“숙박업은 불법인데도 친구가 다녀갔다고 하면 그만이라 신고해도 소용이 없다네요.”
손님은 한숨을 내쉬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녀는 서울 중심 핫플레이스에 집을 얻었다. 친구들 만나기도 좋고 어디든 가기 좋은 곳이라 위치만 보고 집을 구했던 거다. 하지만 그곳은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강남 한복판, 집이 아니라 여행지로 변해 있었다.
“이제는 진짜 조용한 집이면 돼요. 햇빛 없어도 되고요. 창문 작아도 되고, 심지어 반지하도 괜찮아요. 방음만 되면 진짜 다 괜찮아요.”
30대 초반, 재택이 많은 웹디자이너. 일은 주로 밤에 하는 스타일, 감각은 예민한 편
손님의 정보를 취합한 다음
메모장에 ‘방음 최우선’이라고 적고 그 위에 별표를 쳤다.
우리는 주말부터 본격적으로 조용한 집 찾기를 시작했다.
첫 번째 집은 월세가 저렴한 집이었다.
오래전에 지어진 데다 창문은 작고, 바로 옆에 높은 건물이 있어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인테리어도 낡은 편이었다.
대부분은 이런 집을 보면 망설이는데, 그녀는 오히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저는 밤낮이 자주 바뀌는 편이라 해가 너무 쨍하게 들어오는 집은 오히려 불편해요. 이 집 좋네요.”
두 번째 집은 소형 빌라의 사이드 집이었다.
끝집이라 겨울엔 외풍이 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하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끝집이면 오히려 조용하겠네요. 집 앞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니까요. 제가 사람 발소리에 예민해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보통은 단열이나 결로 걱정을 먼저 하는데, 이 손님은 소음이 걱정 일 순위였다.
그게 익숙해 보이기도,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며칠 뒤 그녀는 다시 와서, 골목 안쪽 조용한 집으로 계약했다.
“이 집은 낮에도 조용하더라고요. 햇빛은 덜 들어오는데, 그게 오히려 좋아요.”
북향에 창문도 작은 집이었지만, 매일 귀마개를 끼지 않아도 돼서 점수를 땄다.
조용한 집은 이제 단순한 선호가 아니라, 일상을 지키기 위한 조건이다.
이사해 보기 전까지는 그 집 옆에 조용한 이웃이 사는지, 유독 화가 많은 아주머니가 사는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요즘에는 층간소음으로 이웃끼리 싸움도 잦고, 뉴스에서 얼굴까지 가려야 하는 일도 생긴다.
나도 아이 둘과 주말 내내 씨름하다 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앉아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손님의 말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누군가는 잠시 쉬러 오고, 누군가는 그 옆에서 살아야 할 때,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공존의 장소가 된다.
이제는 그녀가 새로 찾은 집에서, 이어폰 없이 조용한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