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는 안 쓰여 있지만 전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주인의 성격이다.
가끔 ‘악덕 집주인’이 등장한다.
계약 전엔 웃으며 “웬만한 건 다 맞춰드릴게요” 해놓고,
막상 도장 찍고 나면
“에어컨 구멍은 안 됩니다”
“벽에 못도 안 됩니다”
살려고 얻은 집인데, 정작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조건이 먼저 나온다.
조금이라도 뭔가 요청하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거래는 끝났고 태도는 바뀌었다.
이런 경우엔 궁합이고 뭐고, 그냥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케이스보다 더 난감한 건,
서로 문제는 없는데, 조합이 어긋나는 경우다.
얼마 전 계약한 집은 집도 괜찮았고, 사람도 괜찮았다.
세입자는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생이었고,
집주인은 오래된 집을 저렴하게 내놓은 성실한 50대 부부였다.
세입자는 첫 독립이라며 설레는 얼굴로 인테리어 이야기를 많이 했다.
“기숙사에 살 때는 커튼도 없이 살았는데 이 집에서는 예쁜 커튼 달고 싶어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엔 정말 평화롭게 지나가겠지.’
하지만 이사 한 달도 안 돼서 세입자에게 연락이 왔다.
욕실 바닥에 물이 잘 안 빠진다고 했다.
그다음엔 샷시가 너무 뻑뻑해서 잘 안 열리고, 또 보일러가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다고도 했다.
조금씩 조금씩 연락이 늘어갔다.
독립해서 처음 갖게 된 나만의 집이니까, 당연히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출근 전에도, 퇴근 후에도 짬을 내어 셀프 인테리어를 하고,
가구 배치를 바꾸고, 작은 선반을 붙이며 ‘내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불편한 곳이 생기면 그냥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전달을 받는 집주인은 점점 피곤해졌다.
“사는 사람이 좀 알아서 해야죠.”
“집이 오래돼서 그래요. 이런 걸로 매번 전화하면...”
“이번에는 그냥 써보라고 하세요.”
세입자는 서운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전세면 그냥 적당히 참고 살아야 하는 건가요?”
양쪽 모두 점점 날카로워졌다.
나는 그 사이에서 메신저가 됐다.
메시지를 쓰기 전 한참을 고민한다.
‘이걸 어떻게 써야 오해 없이 전해질까?’
‘아니야, 이런 건 문자보다 전화가 낫지 않을까?’
짧은 한 줄에도 감정이 실리고, 그 감정 하나로 일이 커지는 걸 너무 많이 봤다.
그 와중에, 비슷한 시기 다른 집의 세입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입자는 신생아를 돌보는 주부로, 남편은 지방 현장에 나가 있었다.
거의 연락 한 번 없던 분인데, 어느 날 거실 조명이 나갔다며 조심스레 연락을 주셨다.
나는 그 메시지를 집주인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집주인은 바로 움직였다.
“아기 있는 집은 어두우면 안 되죠. LED로 사서 바로 교체해드리러 갈게요.”
세입자는 당황한 듯 말했다.
“그냥 소켓만 갈면 되는 줄 알았는데… 주말에 이렇게까지 오시게 해서 괜히 죄송하네요.”
같은 시기에 계약했던 두 집. 서로 너무 달랐다.
한집은 계속 불편한 연락이 오가고
다른 한집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챙겨주고
둘 다 나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집도 사람도, 궁합이 있다.
집은 부동산이지만, 전세는 인간관계다.
서로의 생활 습관, 기대치, 말투, 반응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집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중개보조인은 오늘도 양쪽 말을 듣고, 내 말은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