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 다가오면 손님이 뜸하다.
비가 한참이던 어느 오후, 할머니 한 분이 우산을 접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한적한 도심 외곽의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고 계셨는데 손주가 있는 도심 쪽으로 이사 오고 싶다고 하셨다.
살던 집은 이미 다른 중개사무소에 매물로 내놓았고 나에겐 이사 갈 아파트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셨다.
“1층이면 좋겠어요. 손주가 오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나중에 내가 다리가 안 좋아지더라도 휠체어나 뭐라도 타게 되면 계단 없는 게 편하니까.”
그 한마디에 할머니의 오늘과 내일이 다 들어 있었다.
손주의 발걸음이 머무는 집, 나이 들어도 불편하지 않을 집.
그게 할머니가 원하는 ‘좋은 집’이었다.
할머니가 살던 집은 40년도 넘은 단독주택이었다.
대지도 넓고, 땅값도 제법 나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비만 오면 마당에 물이 고이고, 수리비는 해마다 불어나는 데다, 동네엔 또래 이웃도 거의 남지 않았다고 했다.
“밤에는 밖에 나가기도 겁나요. 나만 아직 그 동네 사는 것 같아요.”
그 얘기를 들으며 그 집이 더는 삶의 터전이라기보다 ‘떠나야 할 곳이 되었겠구나’ 싶었다.
며칠 뒤, 단독주택이 팔렸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새 집만 잘 구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오신 할머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세금이 많이 나온대요. 나는 집이 하나뿐인데… 국세청에선 두 채라고 하네요.”
남편 명의의 집이 하나 더 있었다.
오래전부터 따로 살고 연락도 끊겼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기혼자’였고 ‘부부’로 간주됐다.
그 집이 합산되면서 1세대 1주택 비과세 혜택은 사라졌고 예상 양도세는 3천만 원에 달했다.
할머니는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것과 동시에 세금을 줄일 방법도 계속 알아보셨다.
세무서에 직접 찾아가고 지인의 소개로 세무사와 법률 상담도 받으셨다.
하지만 아무리 발로 뛰고 자문을 구해도 결론은 같았다.
3천만 원의 세금은 줄어들지도 없어지지도 않았다.
몇 주 만에 다시 찾아오신 할머님은 전보다 훨씬 마르신 모습이었다.
이사 준비와 세금 문제로 마음을 쏟다 보니 식사도 잠도 줄어들었다고 했다.
“밥맛도 없고 기운도 없고… 새집으로 이사 가면 마음이 좀 나아지려나 싶어요.”
말씀은 담담했지만 눈 아래 그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요즘엔 인테리어에 샷시까지 새로 하면 3천만 원은 그냥 들어가요. 제가 샷시랑 내부 공사 다 끝낸 집으로 구해드릴게요. 3천만 원 그냥 잊으세요. 그러다 몸 상하시겠어요.”
할머니는 말없이 웃으셨다. 그 웃음 속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이 뭔지 안다.
그 3천만 원은 단순한 금액이 아니다.
평생을 참고 아끼며 살아온 습관의 총합 같은 돈이다.
그 후로 함께 집을 보러 다녔고 다행히 마음에 들어 하시는 집을 찾았다.
운 좋게 매도인과 조율이 잘돼 천만 원 정도를 깎아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계약날 할머니는 조용히 도장을 찍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집 사고 남는 돈으로 손주들 다 데리고 여행 한 번 가고 싶었는데… 그건 못하겠네. 그래도 덕분에 좋은 집 구했어요.”
세금은 냉정했고, 제도는 사정을 묻지 않았다.
법은 계속 바뀌는데 그걸 미리 알고 집을 사고파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팔고 나서야 알게 되고 그땐 이미 되돌릴 수 없다.
나는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를 잇는 중개뿐 아니라,
살던 집과 앞으로 살아갈 집의 사이도 잘 이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