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집 부인의 손안에
“집만 6개월 봤어요. 주말 데이트 코스는 부동산 가는 거예요"
그녀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오늘도 우리 부동산에 들렀다.
그녀의 계약을 맡은 건 아니지만, 친정집이 우리 부동산 바로 앞이라 들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녀는 결혼식보다 집이 먼저였다.
“드레스보다 등기부등본이 급했어요. 혼인신고 먼저 하고, 대출받고, 결혼식은 여유 생기면 그때 하기로 했어요. 남들 보여주기보다 우리 둘이 살 집부터 만드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그녀는 지금 혼자 전세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계약은 아직 6개월 남았지만, 오피스텔 주인이 “언제든 나가도 된다”라고 해서 혼인 신고 하자마자 신혼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금방 구할 줄 알았단다.
한 집은 햇빛이 안 들고, 한 집은 공사장 옆이라 소음이 심했고, 또 한 집은 근저당이 3억이나 있었다.
쉽게 볼 수 있는 집이 하나도 없었다.
지치고 지쳐갈 때쯤, 정말 괜찮은 매물이 나왔다고 했다.
“진짜 이 집이다 싶었어요. 저희 직장 중간지점이고, 지하철도 가깝고, 방 구조도 딱 마음에 들었어요.”
이사 날짜만 조율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결혼식은 미뤘지만, 드디어 함께 살 수 있는 집이 생기려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오피스텔 주인의 말이 바뀌었다.
“보증금이 지금은 없어요. 다음 세입자 들어오면 그때 드릴게요.”
“말 바꾸신 거예요. 확실히 나가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녀가 따졌지만 돌아온 건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뿐이었다.
신혼집 계약은 무산됐고, 적어뒀던 이사 일정표는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여전히 전세 오피스텔에 있고, 남편은 시댁에서 따로 지낸다.
“이럴 거면 그냥 연애나 계속할 걸 그랬어요. 지금은 연애보다 더 멀고, 더 귀찮고, 덜 설레요.”
나는 도움이 될까 싶어 '전세보증금 반환보장 보험' 이야기를 꺼냈다.
확정일자, 대항력, 계약서 조건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입신고도 안 하고 그냥 살았어요. 그게 나중에 이렇게 발목 잡을 줄은 몰랐죠.”
요즘 부동산에 앉아 있다 보면, 집은 늘 사람 이야기를 끌고 들어온다.
사랑이든 계약이든, 결국 타이밍이 전부인 건 맞고,
집을 둘러싼 문제들은 마음의 문제까지 만든다.
“법적으로는 부부인데, 생활은 따로고, 신혼은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너무 안 풀려요"
신혼은 함께 하자고 약속만 하면 시작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은 집주인의 사정이 좋아야 비로소 시작된다.
혼인신고만으로는 모든 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녀의 신혼은 아직도 전세 오피스텔에 갇혀있다.
그녀는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몇 군데 부동산을 더 돌아볼 거라고 했다.
애써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집 보러 갈 수 있냐는 전화는 그만하고, 이삿날 좀 잡고 싶어요.”
나는 그녀의 말이 집을 구하겠다는 말보다, 나의 신혼을 찾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이런저런 사정을 안고 매물 사이를 헤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녀처럼 또 누군가, 집 때문에 행복을 미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