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조건은 단 한 가지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낯선 조합의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양갈래 머리의 여자아이 한 명, 그리고 그 옆엔 웃음기 없는 얼굴의 엄마.
아이는 의자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고 있었고, 엄마는 그런 아이 곁에서 말없이 종이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들어오는 나를 보며 아이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낮은 층 전세나 반전세로 구할 수 있을까요? 놀이터가 보이면 더 좋고요.”
나는 동네 매물 중 놀이터가 정면으로 보이는 집을 찾았다. 창 너머로 어린이 놀이터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구조였다.
“여기예요. 놀이터도 가깝고, 2층이라 창밖으로도 잘 보여요. 아기 키우는 집이라, 지금 바로 볼 수 있을 거예요. 전화 한번 해볼게요.”
우리는 곧장 그 집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말을 아끼던 아이가, 현관문 앞에 다다르자 조용히 속삭였다.
“여기… 진짜 들어가도 돼?”
엄마는 대답 대신 아이 손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커다란 창. 그 너머로 노란 미끄럼틀과 빨간 그네가 보였다. 놀이터였다.
아이는 창가로 다가가 까치발을 들고, 두 손을 창틀에 살짝 얹었다. 작은 키로는 조금 모자랐지만, 바깥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커 보였다.
“여기가 남향이라 채광도 좋고, 세입자가 깔끔한 분이라 상태도 괜찮아요.”
내 설명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
나는 창가에 서 있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집, 어때? 마음에 들어?”
아이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대답했다.
“이 집은… 엄마랑만 살 수 있어요.”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속마음을 꾹 눌러 담은 말투였다.
어른들의 단어 ‘이혼’은 몰라도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부동산으로 돌아오자, 잠시 외근을 다녀온 사장님이 아이를 보며 말했다.
“귀엽네, 아이스크림 좋아해?”
아이는 사장님 손을 잡고 옆 슈퍼로 향했다.
그 틈에 나는 엄마와 마주 앉았다.
“아이가… 원래 아빠랑 살았어요. 작년까지는요. 올해부터는 제가 직장 구하고 자리를 좀 잡아서, 이제는 제가 데려오기로 했거든요.”
입을 다문 채 버티던 시간이, 그 말로 조금씩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잠깐이라도 혼자 놀이터에 나갔을 때 창문 열고 보고 있으면 안심이 좀 될까 싶어서요. 애 아빠는 놀이터가 가까운 집은 시끄럽다고 싫어했거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엄마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그 집의 매물 상태와 대출 조건을 다시 확인해 메모장에 적어 건넸다.
메모를 챙긴 엄마는 아이의 손을 꼭 쥔 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닫히고, 정적이 내려앉은 사무실 한가운데 아이의 말이 맴돌았다.
이 집은, 엄마랑만 살 수 있어요.
그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는 아이의 작은 결심 같았다.
누군가에게 집은 조건에 맞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 집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 간절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