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떨어졌지만. 집은 보여드립니다

무자격 중개 보조

by 정서한



우리 부동산 간판에는 ‘공인중개사’라고 또렷하게 쓰여 있다.

하지만 나는, 공인도 아니고 중개사도 아니다.

시험은 벌써 세 번째 떨어졌고, 지금은 이 동네 부동산에

파트타임으로 앉아 있는 중개인 비슷한 사람이다.


그래도 명함은 있다.

“○○부동산, 매물 관리 및 고객 응대”

한마디로 전화받고, 매물 올리고, 손님 모시고 남의 집에 다녀오는 일이다.

손님들이 종종 “사장님~” 하고 부르면, 나는 그냥 웃으며 대답한다.

정정하자니 민망하고, 굳이 아니라고 할 이유도 없으니까.


부동산은 은평구 3호선 역 근처에 있다.

강남까지 지하철 한 번에 갈 수 있다는 점이 이 동네의 장점이고,

2천 세대쯤 되는 아파트 단지와 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꽤 괜찮다.

뒤로는 북한산이 듬직하게 서 있고, 앞으로는 초등학교가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은퇴자 부부는 조용한 생활을 찾으러 오고,

아이 키우는 부모들은 실내 구조나 단지 분위기를 따져가며 발품을 판다.

투자자는 수익률을, 실수요자는 햇살 드는 방향을 먼저 묻는다.


부동산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여러 손님들이 찾아온다.

누구는 삶을 옮기고, 누구는 꿈을 접고,

누구는 사랑을 시작한다.

부동산이란 곳이, 의외로 그런 사연들이 오가는 곳이다.


가끔은 고민도 한다.

내년엔 꼭 자격증을 따야 할까,

아니면 이렇게 사람들 이야기 들으며

이 자리에서 조금 더 머물까?


사실 내가 부동산에 발을 들인 건,

거창한 목표나 ‘부동산의 꿈’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회사 다니기엔 아이들이 아직 너무 어렸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에 묶여 있는 건

내 생활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아는 언니가 운영하던 부동산에 놀러 갔다가

“너 말 잘하잖아. 여기 일 한 번 해볼래?” 하는 말에

그냥 한번 해볼까 하고 앉게 됐다.

그게 벌써 2년 전 이야기다.


공인도 아니고, 중개사도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진심을 더하면, 그걸로도 괜찮다 싶었다.


나는 지금,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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